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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비심비불(非心非佛)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마조 도일은 '이 마음이 곧 부처'라던 자기 말에 제자들이 매달리자, 그 말조차 병을 고치려던 약이었다며 정반대로 뒤집어, 붙잡을 것 자체를 치워 버렸어요.
먼저 사람부터 짧게 소개할게요.
마조 도일(馬祖道一)은 709년부터 788년까지 살았다고 전하는 당나라 때 선종 스님이에요.
(자료에 따라 688년부터 763년까지라는 다른 설도 있어요.)
이분이 남긴 짧은 말 가운데 하나가 '비심비불'이에요.
한 글자씩 풀어 볼게요.
非(아닐 비)·心(마음 심)·非(아닐 비)·佛(부처 불), 그러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예요.
딱 네 글자죠.
그런데 이상해요.
마조는 원래 '이 마음이 곧 부처(即心是佛)'라고, 부처를 멀리서 찾지 말고 지금 네 마음을 보라고 가르친 스님이거든요.
그런데 같은 사람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니, 앞뒤가 안 맞아 보여요.
이 어긋남이 바로 비심비불의 핵심이에요.
마조는 자기 말을 스스로 지운 거예요.
자료에 이런 일화가 전해요.
어떤 승려가 마조에게 왜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느냐고 묻자, 마조는 그 말이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답했대요.
그러고는 상황에 따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정반대로 말했다고 해요.
(이 뒤집은 말은 자료에 따라 무심무불(無心無佛)로도 적혀요.)
방편이라는 말을 감기약에 비유해 볼게요.
부처가 저 하늘 어딘가 따로 있다고 믿으며 바깥만 헤매는 사람에게는 '네 마음이 곧 부처야'라는 약이 딱 맞아요.
밖으로 뛰던 마음을 안으로 돌려주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병이 나은 뒤에도 약을 손에서 놓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마음이 부처'라는 생각을 또 하나의 우상처럼 꼭 쥐고, 그 문장에 붙들려 버려요.
약이 새로운 병이 된 셈이죠.
그때 마조는 반대 약을 줘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붙잡고 있던 '마음'도 '부처'도 손에서 놓게 만드는 거예요.
우는 아기가 그쳤으니 달래던 말도 거둔 거죠.
겉보기엔 정반대지만, 둘은 같은 목적을 가진 한 쌍이에요.
표로 견줘 볼게요.
| 구분 | 即心是佛 (즉심시불) | 非心非佛 (비심비불) |
|---|---|---|
| 뜻 | 이 마음이 곧 부처다 |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
| 쓰는 상황 | 부처를 바깥에서 찾는 사람에게 | 그 말에 매달리는 사람에게 |
| 하는 일 | 마음을 안으로 돌려줌 | 붙든 것을 놓게 함 |
그래서 둘 중 어느 하나가 마조의 '진짜 정답'인 게 아니에요.
앞의 말을 정답이라 여기고 외우기 시작하면, 마조는 바로 뒤의 말로 그 외움을 깨요.
비심비불은 '이것도 답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지우개 같은 말이에요.
여기서 조심할 게 있어요.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를 '그럼 아무것도 없고 아무래도 좋다'로 읽으면 안 돼요.
마조가 없애려던 건 마음이나 부처가 아니라, 말 한마디를 고정된 정답으로 꼭 쥐는 그 손아귀였어요.
우리도 좋은 말 한마디를 만나면 그걸 붙잡아요.
'나를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을 살자' 같은 문장을 액자에 걸어 두고요.
그 말이 처음엔 나를 살리다가, 어느새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는 또 다른 압박으로 바뀌기도 하죠.
비심비불은 그 순간에 대고 '그 말도 내려놓아도 돼'라고 일러 주는 목소리예요.
마조가 이렇게 말을 세웠다 지웠다 한 건 변덕이 아니라, 어떤 문장도 진리 자체는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는 몸짓이었어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쳐다보면 안 되니까요.
비심비불(非心非佛)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 도일의 말이에요.
그는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쳐 놓고, 사람들이 그 말에 매달리자 정반대 말로 뒤집었어요.
두 말은 싸우는 게 아니라, 병에 맞춰 주고 거두는 한 쌍의 약이에요.
기억할 한 가지는 이거예요.
비심비불이 없애려는 건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 좋은 말 한마디를 유일한 정답으로 꼭 쥐려는 우리의 습관이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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