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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타교환은 나와 남을 가르는 마음의 담을 허물어, 남이 겪는 고통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돌볼 일'로 옮겨 놓는 마음 훈련이에요. 나와 남을 딱 잘라 나누는 고정된 자아가 실은 없다고 보았기에, 이 자리바꿈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8세기 인도의 날란다 대사원에서 공부한 승려 샨티데바는 『입보리행론(入菩薩行論)』이라는 긴 시를 남겼어요.
그 안에 담긴 핵심 수행 하나가 바로 자타교환, 산스크리트로 paratmasamatā-parivartana, 한자로 自他交換이에요.
말 그대로 '나(自)와 남(他)의 자리를 바꾼다(交換)'는 뜻이지요.
무슨 자리를 바꾸느냐면, 마음이 쏠리는 관심의 자리예요.
우리는 보통 내 배고픔은 크게 느끼고 옆 사람 배고픔은 작게 느껴요.
시험을 보면 내 점수는 밤새 신경 쓰이는데 짝꿍 점수는 그냥 '남 일'이지요.
자타교환은 이 무게추를 옮겨 보는 연습이에요.
내 아픔에 두던 관심을 남의 아픔 쪽으로 슬쩍 기울여, 남이 아프면 나도 진짜로 마음이 쓰이게 만드는 거예요.
억지로 착한 척하는 게 아니라, 관심의 초점 자체를 바꾸는 훈련인 셈이지요.
보통은 '나는 나고 너는 너인데 어떻게 바꿔?'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샨티데바는 '나'라는 게 딱딱한 알맹이처럼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보았어요.
그는 나가르주나의 중관 철학을 따른 사람이라, 내 안에 변치 않는 주인이 앉아 있다는 믿음은 근거가 없고 오히려 해롭다고 여겼지요.
그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요.
마음의 흐름은 '줄(queue)' 같고, 몸과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의 모임은 '군대' 같다는 거예요.
줄이라는 물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늘어선 것뿐이고, 군대라는 한 덩어리 몸이 있는 게 아니라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뿐이잖아요.
'나'도 마찬가지로 여러 조각이 잠깐 모여 흘러가는 것일 뿐, 고정된 주인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는 '고통을 겪는 정해진 이는 따로 없다'는 취지로 말했지요. (이 구절들은 자료에 영어 번역으로만 전하니, 뜻으로만 새겨 주세요.)
여기서 유명한 물음이 나와요.
나에게든 남에게든 행복이 똑같이 소중하다면, 왜 나만 내 행복을 챙길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거예요.
나와 남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없다면, 남의 고통을 돌보는 일이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지요.
자타교환은 사실 두 단계로 되어 있어요.
먼저 나와 남을 똑같이 저울에 올려 보고(자타평등), 그다음에 관심의 자리를 실제로 바꿔 보는(자타교환) 거예요.
| 단계 | 원어 | 하는 일 | 비유 |
|---|---|---|---|
| 1단계 자타평등 | paratmasamatā | 나와 남의 행복·고통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김 | 나도 한 표, 친구도 한 표 |
| 2단계 자타교환 | parivartana | 나에게 쏠린 관심을 남 쪽으로 옮겨 봄 | 내가 앉던 자리를 친구에게 내줌 |
먼저 '내 행복이 소중하듯 남의 행복도 똑같이 소중하다'고 저울을 맞춰요.
그래야 그다음에 자리를 바꿔도 억울하지 않거든요.
그러고 나서 '내가 챙기던 관심을 이번엔 저 사람에게'라고 실제로 옮겨 보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남을 돕는 일이 나를 희생하는 손해가 아니라, 나와 남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된다고 샨티데바는 보았어요.
자타교환은 멀리 있는 어려운 수행처럼 들리지만, 사실 아주 작은 순간에도 써 볼 수 있어요.
급식 줄에서 마지막 반찬을 두고 '내가 먹을까' 고민할 때, 잠깐 자리를 바꿔 뒷사람 마음이 되어 보는 거예요.
버스에서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줄 때도, 내 편함과 그 사람의 편함을 같은 저울에 올려 본 거지요.
샨티데바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멈추고 즐거움을 가져와야 한다'는 넓은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영국 철학자 벤담보다 약 천 년이나 앞서 나온 표현일 수 있다고 봐요.
거창한 말 같지만 뿌리는 단순해요.
나와 남 사이의 담이 생각보다 얇다는 것, 그래서 남의 아픔을 내 일처럼 돌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타교환은 샨티데바가 『입보리행론』에서 가르친 마음 훈련으로, 나와 남을 가르던 관심의 자리를 실제로 바꿔 보는 연습이에요.
그 바탕에는 '나'라는 고정된 알맹이는 없다는 생각이 있어서, 나와 남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없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먼저 나와 남을 똑같이 저울에 올리고(자타평등), 그다음 관심을 남 쪽으로 옮겨요(자타교환).
결국 남을 돕는 일이 손해가 아니라 나와 남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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