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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희론의 적멸이란, 우리 마음이 '있다·없다' '이것이다·저것이다' 하고 끝없이 지어내는 개념과 말의 놀음이 잦아들 때 비로소 참된 평안에 이른다는 뜻이에요. 세상이 시끄러운 게 아니라, 세상을 쉼 없이 재단하는 우리 머릿속이 시끄러운 거였다는 이야기죠.
나가르주나는 한자로 용수(龍樹)라 부르는 인도 승려로, 대략 150년부터 250년경에 활동하며 대승불교의 뼈대를 세운 사상가예요.
어려운 이론이 많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마음의 목표를 딱 한마디로 줄이면 '희론의 적멸'이에요.
'희론(戲論)'은 글자 그대로 풀면 '장난처럼 벌이는 말놀음'이에요.
우리 마음이 무언가를 보면 곧바로 이름을 붙이고, 좋다·싫다 나누고, 있다·없다 따지며 생각을 끝없이 부풀리는 습관을 가리켜요.
'적멸(寂滅)'은 그 소란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을 말하고요.
그러니 희론의 적멸은 '머릿속 수다가 멎어 마음이 잔잔해진 상태'라고 이해하면 돼요.
예를 들어 볼게요.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가 몇 시간째 '읽씹(읽고 답 안 함)'이면, 우리 머릿속에서는 곧바로 이야기가 시작돼요.
'화났나?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원래 저런 애인가?' 하고요.
사실은 친구가 그냥 자고 있을 뿐인데, 마음은 벌써 소설 한 편을 써 버려요.
이 쉬지 않는 각본 짓기가 바로 희론이에요.
나가르주나가 보기에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만나지 못해요.
늘 개념이라는 색안경을 한 겹 끼고, 거기에 다시 판단을 덧칠하죠.
물 한 잔을 봐도 '내 것/네 것', '깨끗함/더러움', '많음/적음' 같은 딱지를 순식간에 붙여요.
문제는 이 딱지가 진짜 사물의 성질이라고 착각하는 데 있어요.
그렇게 마음은 스스로 만든 개념의 그물에 걸려 괴로워해요.
희론 중에서도 나가르주나가 가장 끈질기다고 본 것이 '있다냐, 없다냐'의 싸움이에요.
우리는 어떤 것을 두고 꼭 '진짜로 있다'거나 '아예 없다'는 둘 중 하나로 못 박으려 하죠.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해요.
非有亦非無,亦無非有無,此語亦不受,如是名中道.
곧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있음과 없음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말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를 일러 중도라 한다'는 뜻이에요.
놀라운 대목은 마지막 문장이에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자기 말까지 붙들지 말라고 해요.
마치 계단을 다 오른 뒤에는 사다리를 치워야 하듯, 다툼을 끝내려고 꺼낸 말에마저 매달리면 그게 또 새로운 희론이 되니까요.
그래서 적멸은 어느 편이 이겼는지 판정하는 게 아니라, '이겨야 한다'는 다툼 자체가 스르르 힘을 잃는 자리예요.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생겨요.
'그럼 생각을 다 끄고 멍하게 있으라는 거야?'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나가르주나는 오히려 '공(空)'이라는 가르침조차 잘못 붙들면 위험하다고 경고했어요.
그는 그것을 '잘못 잡은 뱀이나 잘못 외운 주문'에 빗댔죠.
뱀을 꼬리 쪽으로 잘못 쥐면 도리어 물리듯, 좋은 가르침도 딱딱한 결론으로 움켜쥐면 다시 마음을 옭아매요.
그러니 적멸은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생각을 진짜라고 믿고 매달리는 힘을 내려놓는 거예요.
라디오를 부수는 게 아니라 볼륨을 줄이는 쪽에 가깝죠.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대화하는 일은 그대로 해요.
다만 거기에 '반드시 이래야 해'라는 집착의 각본을 덧씌우지 않을 뿐이에요.
소음이 잦아든 만큼 세상은 오히려 또렷하게 보여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속 재판을 열어요.
'저 사람은 나를 무시했어', '이건 실패야'라고 판결을 내리고, 그 판결을 진실로 믿으며 괴로워하죠.
나가르주나의 희론의 적멸은, 그 판결문이 사실은 내 마음이 급하게 써 내려간 초안일 뿐임을 알아차리라고 권해요.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생각이 곧 진실은 아니다' 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소란은 조금씩 가라앉아요.
조용한 마음은 도망친 자리가 아니라,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는 자리예요.
희론은 우리 마음이 쉬지 않고 지어내는 개념과 판단의 말놀음이고, 적멸은 그 소란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이에요.
나가르주나는 특히 '있다·없다'로 못 박으려는 다툼을 대표적인 희론으로 보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자기 말에마저 매달리지 말라고 했어요.
적멸은 생각을 지우는 멍한 상태가 아니라, 생각을 진짜라 믿고 붙드는 집착을 내려놓는 마음이에요.
오늘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그 시끄러움이 세상이 아니라 내 각본에서 나온 것임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고요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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