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보리심(菩提心)은 나 혼자 편해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고통에서 건지겠다고 일으키는 마음이에요. 샨티데바는 이 마음을 내는 순간이 곧 깨달음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라고 봤어요.
반에서 나 혼자 100점 맞으면 기분이 좋죠.
그런데 어떤 친구는 "우리 반 전부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두 번째 마음, 나만이 아니라 모두를 향해 뻗는 마음이 바로 보리심의 느낌이에요.
보리심은 한자로 菩提心,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치타(bodhicitta)예요.
보리(菩提)는 '깨달음', 심(心)은 '마음'이니, 글자 그대로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에요.
이 말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사람이 샨티데바(寂天, Śāntideva)예요.
그는 8세기 인도 날란다(那爛陀) 대사원에서 지낸 승려이자 시인으로,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 Bodhisattvacaryāvatāra)』이라는 긴 시를 남겼어요.
중요한 건, 보리심이 그냥 '나 혼자 똑똑해지고 싶다'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샨티데바가 말한 보리심은 '모든 중생을 함께 건지면서 깨닫겠다'는, 방향이 바깥을 향한 마음이에요.
그의 두 저작 전체가 바로 이 마음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남을 도우라니, 결국 나만 손해 아닌가요?"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샨티데바의 대답은 뜻밖이에요.
그는 보리심을 기르는 일이 보살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행복을 바라는 사람에게도 유익하다고 했어요.
왜 그럴까요?
마음이 '나, 나, 나'로만 좁아지면 조그만 일에도 서운하고 불안해져요.
반대로 마음이 '모두'로 넓어지면, 신기하게도 내 걱정거리가 작아 보여요.
큰 그릇에 물 한 방울이 떨어져도 넘치지 않는 것처럼요.
『입보살행론』의 앞부분 장들은 바로 이 보리심이 얼마나 값진지를 찬탄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더 굳세게 키우고 지켜 나갈지를 알려줘요.
샨티데바는 이 마음을 한 번 반짝 냈다가 잊는 게 아니라, 계속 강화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자세히 다뤄요.
마음도 근육처럼 반복해서 써야 튼튼해지니까요.
보리심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요.
샨티데바는 보리심을 갖춘 마음이 우리를 괴롭히는 번뇌(kleśa, 煩惱)를 다스리는 해법이라고 봤어요.
번뇌 중에서도 그가 콕 집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갈애(taṇhā), 곧 '더, 더 갖고 싶다'는 끝없는 욕심이에요.
다른 하나는 분노(krodha), 곧 '왜 나한테 이래' 하고 치미는 화예요.
이 둘은 마치 목마를수록 바닷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좇을수록 더 괴로워지는 마음이에요.
보리심은 여기에 어떻게 약이 될까요?
마음의 주인공이 '나'에서 '우리 모두'로 바뀌면, 화나 욕심이 설 자리가 좁아져요.
친구가 미울 때 '저 친구도 나처럼 행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화가 스르르 가라앉는 것과 같아요.
나만 챙기려는 마음이 클수록 화와 욕심도 커지고, 모두를 향한 마음이 클수록 그 불길이 잦아드는 거예요.
| 좁은 마음 | 보리심 |
|---|---|
| 나만 잘되면 된다 | 모두 함께 잘되기를 바란다 |
|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 | 화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 |
| 가질수록 더 목마르다 | 욕심이 힘을 잃는다 |
보리심(菩提心)은 나 혼자 깨닫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지겠다고 일으키는 마음이에요.
샨티데바는 이 마음을 내는 순간이 깨달음의 출발점이며, 남을 위하는 이 마음이 결국 나 자신에게도 이롭다고 했어요.
마음이 '나'에서 '모두'로 넓어질 때, 우리를 괴롭히던 화와 욕심 같은 번뇌가 힘을 잃는다는 것, 이것이 그가 『입보살행론』 전체에 걸쳐 노래한 한 가지예요.
오늘 누군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그 작은 마음이, 샨티데바가 말한 큰 길의 첫걸음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