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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날 코르도바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가 16살 소년의 한마디에 얼굴이 굳었어요.
1180년경, 지금의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
당대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이븐 루시드가 한 소년을 만났어요.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집대성한 합리주의 대철학자로, 유럽 학자들이 '아베로에스'라 부르며 수백 년간 교과서처럼 인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날 그를 찾아온 건 정식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16살 소년이었어요.
이름은 이븐 아라비, 당시엔 아무도 몰랐어요.
이븐 루시드가 물었어요.
"이성으로 푸는 진리와 직관으로 얻는 진리, 이 둘이 같은가?"
소년이 답했어요.
"예. 그리고 아니오."
늙은 철학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요.
이건 이븐 아라비가 나중에 자기 책에 직접 남긴 기록이에요.
왜 충격이냐고요?
이성으로 쌓은 진리 체계에 "예이기도 하고 아니오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건, 이성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에요.
평생 이성의 칼날을 갈아온 철학자에게, 갓 십대인 소년이 단 두 단어로 그 칼의 경계를 그어버린 거예요.
오늘로 치면 고등학생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사무실에 찾아가서, 그 사람의 평생 이론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라고 말하고 수상자가 말문이 막힌 것과 같아요.
1200년, 35살의 이븐 아라비는 안달루시아 해안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다시는 그 땅을 보지 못했어요.
당시 안달루시아는 이슬람 문명의 가장 화려한 무대였어요.
철학, 의학, 천문학, 시가 동시에 꽃피던 지식 도시로, 오늘날로 치면 실리콘밸리와 뉴욕과 파리를 합친 것 같은 곳이에요.
그런데 이븐 아라비는 환상 속에서 "동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편도 짐만 챙겨 메카 순례를 떠났어요.
가족을 두고, 지인들을 두고, 그 화려한 도시를 두고요.
이후 그는 튀니스, 카이로, 예루살렘, 모술, 바그다드, 코니아를 거쳐 결국 다마스쿠스에 정착했어요.
죽을 때까지 안달루시아를 다시 밟지 않았어요.
그게 전략이었을 리는 없어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이 모인 안달루시아를 등진 건, 오히려 커리어를 포기하는 선택에 가까웠어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길 위에서 글을 썼어요.
떠돌면서 쓰고, 쓰면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또 걸었어요.
결국 그 긴 여정이 그를 이슬람 신비주의 역사에서 아무도 넘지 못한 자리에 올려놓았어요.
14살 페르시아 여인을 위해 쓴 시 한 권이 이븐 아라비를 평생 변호인으로 만들었어요.
1202년, 메카에 머물던 이븐 아라비는 페르시아 출신 학자의 딸 니잠을 만났어요.
나이는 14살 안팎, 학식과 아름다움 모두 탁월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어요.
그는 니잠에게서 영감을 받아 사랑 시집 「타르주만 알아쉬와크」, 우리말로 '욕망의 해석자'를 썼어요.
제목부터 강렬해요.
그런데 책이 나오자마자 보수적인 학자들이 들고일어났어요.
"신앙의 거장이 어린 여인을 향한 연애시를 썼다"는 비난이었어요.
이에 이븐 아라비는 200쪽이 넘는 주석서를 따로 썼어요.
시의 모든 행을 한 줄씩 해석하면서, "이건 신을 향한 영적 비유예요"라고 변호한 거예요.
오늘로 치면 이래요.
존경받는 목사가 신도를 주제로 발표한 사랑 노래가 논란이 되자, 300쪽 신학적 해설서를 써서 "가사의 '그대'는 사실 하나님을 뜻해요"라고 주석을 단 것과 같아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주석서 덕분에 그 시집은 신비주의 시학의 고전이 됐어요.
욕망과 신성함이 같은 언어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이븐 아라비가 평생 고집한 핵심이었으니까요.
37권의 책을 쓰고도 이븐 아라비는 단 한 줄도 자기 글이라 부르지 않았어요.
그의 대표작은 「알 푸투핫 알마키야」, 우리말로 '메카의 계시'예요.
메카 체류 중 시작해 30년 가까이 써 내려간 이 책은 37권 분량, 560장에 달해요.
그런데 이 책의 서두에서 이븐 아라비는 이렇게 썼어요.
"나는 한 글자도 내 의지로 쓰지 않았다. 모든 문장은 받아쓴 것이다."
평생 350권 안팎의 저작을 남기면서도 그는 한 번도 '저자'를 자처하지 않았어요.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많이 쓴 사상가 중 한 명이 자신의 저작권을 평생 부정한 거예요.
이게 겸손의 수사가 아니에요.
그에게 글 쓰는 행위는 창작이 아니라 수신이었어요.
신이나 우주가 흘려보내는 것을 자기가 받아적는다는 게 그의 핵심 신념이었어요.
와흐다트 알우주드라는 개념이 있어요.
'존재의 일원성'이란 뜻으로, 신과 세계와 나 사이에 실질적인 경계가 없다는 생각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바닷물을 국자로 떠내면 국자 안에도 바다가 있고 국자 밖에도 바다가 있는 것처럼, 나와 신 사이에도 실제 경계가 없다는 거예요.
이 개념 안에서 보면 '저자'라는 말 자체가 무너져요.
글을 쓰는 '나'가 결국 전체의 일부라면, '내가 썼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거든요.
그는 76살에 다마스쿠스에서 눈을 감았어요.
16살에 대철학자를 침묵시키고, 35살에 고향을 등지고, 평생 글을 쓰면서도 저자를 거부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받아 썼다고 주장한 그 350권의 책들, 지금도 아무도 다 읽지 못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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