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스코틀랜드의 가을은 유독 일찍 찾아옵니다.
안개가 낮게 깔리고 돌길이 축축해지는 어느 날, 콜린 매클로린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년이 글래스고 대학 정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1709년의 일이었습니다.
소년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이었고, 두 팔에는 자기 키만큼 쌓인 책을 안고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던 수위가 잠깐 멈칫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겠죠.
"저 애 아버지가 교수인가?"
아니었습니다.
콜린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아홉 살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코틀랜드 시골 마을 킬모단에서 삼촌 손에 자란 고아 소년이었죠.
그런데 이 아이가 열한 살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지 1년 만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완전히 마쳤고, 신학·철학·자연과학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열아홉 살, 스코틀랜드 북쪽 끝의 애버딘 마리샬 대학에서 수학 교수 자리에 지원했습니다.
경쟁자들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열아홉짜리 꼬마한테 교수 자리를?"
그때 영국 왕립학회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이 청년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는 이 자리에 충분히 적합합니다."
서명은 아이작 뉴턴이었습니다.
이의는 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깐 시계를 돌려봅시다.
오늘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sin(30°)를 계산해 봤다면, 그 답은 0.5가 0.001초도 안 되어 나왔을 겁니다.
당연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1700년대 수학자들에게는 그 '당연함'이 없었습니다.
계산기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심지어 제대로 된 수학 공식조차 많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당시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궤도를 계산해야 했습니다.
포병 장교들은 포탄이 어디 떨어질지 알아야 했습니다.
항해사들은 배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계산에는 삼각함수나 지수 같은 값들이 필요했는데, 이걸 구하는 방법이라곤 손으로 직접 더하고 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원주율 파이(π)를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구하는 데 어떤 수학자는 수개월을 쏟아부었습니다.
망원경을 발명한 과학자 시대에, 사람들은 여전히 산수를 손으로 하고 있었던 겁니다.
책상 위에는 깃털 펜, 잉크병, 그리고 수천 장의 종이.
바닥엔 찢어진 계산지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한 번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수학자들의 진짜 적은 방정식이 아니라, 계산 실수였습니다.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꿈꾼 건 하나였습니다.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레고 블록을 생각해 보세요.
코끼리 모양의 정교한 조각품도, 결국 작은 블록들을 차곡차곡 쌓은 결과물입니다.
블록 두 개짜리 코끼리는 뭉툭하지만, 열 개짜리는 조금 더 코끼리 같고, 백 개짜리는 진짜 코끼리처럼 보입니다.
매클로린 급수의 아이디어가 정확히 이겁니다.
어떤 복잡한 수학 함수도, 아주 단순한 항(項)들을 계속 더하는 것으로 점점 정확하게 흉내낼 수 있습니다.
sin(x)를 예로 들어볼까요.
사인 함수의 그래프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곡선입니다.
이걸 직접 계산하려면 원래는 꽤 어렵습니다.
그런데 매클로린은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이 곡선을 x, x³, x⁵, x⁷... 같은 간단한 항들의 합으로 쓰면 어떨까?"
마치 코끼리를 레고 블록으로 쪼개듯이.
첫 번째 블록(x)만 쓰면 대충의 근사값.
두 번째 블록(x³ 항)을 더하면 조금 더 정확해지고.
세 번째, 네 번째 블록을 쌓을수록 점점 진짜 사인 곡선에 가까워집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실제로 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전시키던 미적분학의 핵심 아이디어와 연결됩니다.
매클로린은 그것을 체계화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공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어떤 함수든, 특정 점 근방에서 그 함수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그 변화의 가속도는 얼마인지, 그 가속도의 가속도는 얼마인지를 알면 무한히 많은 덧셈으로 정확한 값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번에 정확한 값을 구하는 대신, 천천히 좁혀가는 방식입니다.
멀리서 과녁을 향해 점점 가까이 걸어가는 것처럼.
항을 더하면 더할수록 오차는 줄어들고, 결국 원하는 만큼 정밀한 값을 얻습니다.
이게 왜 혁명이었냐고요.
덧셈과 곱셈만 할 수 있으면, 세상 거의 모든 수학 함수를 계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사칙연산으로, 우주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도구를 만든 것입니다.
지금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이 있다면, 그 안에 매클로린이 살고 있습니다.
계산기 앱을 열고 sin(0.5)를 누르는 순간, 스마트폰 안의 칩은 무한급수를 더합니다.
항을 하나씩 더할 때마다 더 정확한 값이 나오고, 충분히 정확해지면 멈춥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300년 전 열아홉 살 청년이 만든 아이디어가, 지금 매 순간 수십억 대의 기기 안에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GPS를 생각해 보세요.
위성에서 신호를 받아 위치를 계산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삼각함수 계산이 필요합니다.
그걸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바로 급수 근사입니다.
음성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 들어온 소리를 분석할 때, 복잡한 음파를 단순한 수학 함수들의 합으로 분해합니다.
이 분해 과정에도 급수의 아이디어가 깔려 있습니다.
게임 속 물리 엔진은요?
공이 어떻게 튀고, 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산할 때도 매 순간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급수로 근사해서 처리합니다.
비행기 날개 설계, 의료 영상 처리, 기상 예측 모델.
어디를 파도 급수가 나옵니다.
재밌는 건, 매클로린 본인은 스마트폰 같은 걸 꿈에도 상상 못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냥 "복잡한 걸 더 쉽게 계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그런 법입니다.
만든 사람도 예상 못 한 곳에서 피어납니다.
씨앗을 심은 사람은 그 나무 아래 앉아 쉬지 못했지만, 300년 후의 우리가 그늘을 누리고 있습니다.
매클로린은 결국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뉴턴의 추천으로요.
그곳에서 그는 뉴턴 역학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체계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뉴턴의 아이디어는 천재적이었지만, 증명 방식이 워낙 독특해서 동료 수학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매클로린은 그것을 고전 기하학의 언어로 다시 써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위해 어려운 교과서를 쉽게 풀어주듯이.
하지만 그의 삶은 수학 외에도 한 가지 큰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1745년, 스코틀랜드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보니 프린스 찰리'가 이끄는 자코바이트 군대가 에든버러를 위협했습니다.
매클로린은 교수실을 나와 삽을 들었습니다.
도시 방어를 위한 요새를 직접 설계하고, 시민들과 함께 밤낮으로 참호를 팠습니다.
수학 교수가 군사 엔지니어가 된 것입니다.
반란은 결국 진압되었지만, 그 겨울의 혹독한 노동이 그를 망가뜨렸습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1746년 봄, 매클로린은 에든버러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나이 마흔여덟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교과서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그냥 앞에 놓인 문제를 풀었을 뿐입니다.
열한 살에 대학 문을 열었던 그 소년이, 마지막까지 자기 도시의 문을 지키려 했습니다.
수학자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매클로린 급수'라는 이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집념,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책상 앞뿐 아니라 삽을 들어야 할 때 삽을 드는 용기.
그것들이 진짜 유산입니다.
오늘 당신의 스마트폰이 GPS 위치를 잡고, 목소리를 알아듣고, sin 값을 계산할 때마다, 1700년대 스코틀랜드 안개 속에서 책을 안고 대학 문을 열었던 소년이 살짝 웃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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