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1942년 후에.
프랑스 식민지 치하의 베트남에서, 열여섯 살 소년 응우옌 쑤언 바오는 뜨히에우 사원의 나무 문 앞에 섰다.
그 문을 두드리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절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속의 이름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가족도, 고향도, 장래도 — 그가 알던 삶의 지도가 사원 문 안쪽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소년은 문을 두드렸다.
사원 안에서 그는 틱낫한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베트남 사찰의 교육은 수백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전은 한문으로 씌어 있었고, 승려들은 의미를 모른 채 발음만 외웠다.
제 나라 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읽을 방법이 없었다.
틱낫한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세속의 학문과 불교 수행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어로 된 최초의 불교 잡지 발간에도 참여했다.
개혁을 꿈꾼다는 것은 늘 그렇듯, 기존 질서와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문을 두드렸고, 되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전쟁이 본격화되던 1964년, 틱낫한은 사원의 독방을 나와 거리로 나갔다.
그가 본 것은 이랬다.
마을이 불탔다.
논이 폭격 자국으로 가득한 웅덩이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붕도 없는 땅 위에 앉아 있었다.
어느 편이 폭탄을 떨어뜨렸는지는 죽은 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봉사청년학교를 세웠다.
1만여 명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망치를 들고 폭격당한 마을로 들어갔다.
쓰러진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문제는 곧 나타났다.
남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했다.
베트콩은 이들을 미국의 앞잡이로 의심했다.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는 적으로 보였다.
자원봉사자 여럿이 살해당했다.
누가 쏜 총인지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틱낫한은 그래도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훗날 그는 이것을 앙가주망(참여)이라 부르지 않고, 인터비잉(interbeing)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을 끊고 한쪽을 택하는 것은 이미 폭력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철학이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 학교를 지으며 그 생각이 자랐다.
1966년, 틱낫한은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에서 베트남은 뉴스 속 숫자였다.
사상자 수, 출격 횟수, 점령 지역의 면적.
베트남 사람이 거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시카고에서 그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만났다.
두 사람이 앉은 방은 크지 않았다.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왔고, 탁자 위에는 서류와 찻잔이 있었다.
킹 목사는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공개 발언을 피해왔다.
민권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전쟁 반대 발언이 운동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 만남 이후 킹 목사는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이듬해 1967년, 그는 노벨 평화상 위원회에 틱낫한을 후보로 추천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온화한 승려의 아이디어를 실천한다면, 세계 평화의 기념비를 세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문은 틱낫한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남베트남 정부는 그의 귀국을 금지했다.
전쟁이 끝난 뒤 들어선 통일 베트남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편도 들지 않은 사람은 어느 편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열여섯 살에 두드린 문이 닫혀버렸다.
망명 16년째인 1982년, 틱낫한은 프랑스 보르도 인근의 버려진 농가를 손에 넣었다.
건물은 낡았고, 땅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거기에 자두나무를 심었다.
이유가 있었다.
자두가 열리면 팔아서 베트남 전쟁 고아들을 돕는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농가가 플럼빌리지(Plum Village)가 되었다.
처음에는 수십 명이었다.
그러다 수백 명이 왔고, 수천 명이 왔다.
사람들은 여기서 아주 이상한 것들을 배웠다.
천천히 걷는 법.
밥 한 술을 씹으며 온전히 그 맛에 머무는 법.
숨을 들이쉬면서 그 숨에만 집중하는 법.
이것이 왜 이상한가.
현대인은 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고, 걸으면서 전화를 하고, 자면서도 내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온전히 있지 않다.
틱낫한이 가르친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 그것이 전부였다.
그가 쓴 책은 100권이 넘었다.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단어가 서구 일상 언어에 들어온 것은 이 시기였다.
자두나무를 심은 버려진 농가가 서구 최대의 불교 수행 공동체가 되었다.
후에의 뜨히에우 사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승려는, 프랑스 남부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사원을 지었다.
2014년 가을, 틱낫한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말을 잃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 입적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말없이, 휠체어에 앉아, 4년을 더 살았다.
2018년 10월, 베트남 정부가 허가를 내렸다.
39년 만에 귀국이 허용되었다.
그가 향한 곳은 하노이도, 호치민도 아니었다.
후에의 뜨히에우 사원.
열여섯 살 소년이 문을 두드렸던 바로 그 절이었다.
휠체어가 사원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그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매일 그 연꽃을 바라보았다.
말이 없었으므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2022년 1월 22일, 틱낫한은 그 사원에서 입적했다.
나이 아흔다섯이었다.
유언장은 없었다.
대신 제자들에게 미리 써둔 서한이 있었다.
거기에 한 문장이 있었다.
"나는 구름이 되어 계속할 것이다."
구름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 땅에서 자두나무가 자란다.
열여섯 살에 두드린 문, 폭탄 자국 위에 세운 학교, 시카고의 작은 방, 프랑스 남부의 농가, 그리고 다시 뜨히에우 사원의 나무 마루.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가 평생 말하려 했던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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