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상상해보세요.
어느 날 TV를 켰더니, 퀴즈쇼의 상금이 현금이 아니라 소 1,000마리입니다.
그것도 뿔마다 금을 입힌, 걸어다니는 금덩어리.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고대 인도 비데하 왕국의 자나카 왕이 정확히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왕은 자기 궁전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브라만(사제 계급) 수백 명이 대리석 바닥 위에 반원을 그리며 앉았습니다.
횃불이 석조 기둥 사이를 비추고, 궁정 한가운데에는 금빛 뿔을 단 소 천 마리가 서 있었습니다.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소를 모두 가져간다."
학자들은 서로 눈치를 봤습니다.
누가 감히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먼저 나서겠습니까.
그런데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즈나발키아.
그는 소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제자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를 몰고 가거라."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에요.
궁전이 술렁였습니다.
학자들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아직 토론도 안 했는데 상금을 가져가다니!"
하지만 야즈나발키아는 태연했습니다.
"소를 가장 지혜로운 자에게 준다 했으니, 가져가는 것이 맞습니다.
혹시 이의가 있는 분은 질문하십시오."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 토론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라는 고대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파니샤드는 힌두교의 핵심 텍스트이자,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철학서 중 하나입니다.
야즈나발키아의 도발에 학자 8명이 차례로 나섰습니다.
각자 자신 있는 질문을 들고.
첫 번째 도전자가 물었습니다.
"세상 만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야즈나발키아가 답했습니다.
"물입니다."
"그러면 물의 근본은요?"
"바람입니다."
"바람의 근본은요?"
이런 식으로 질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보통 학자라면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의 근본은 없다"고 선을 그었을 겁니다.
하지만 야즈나발키아는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물 → 바람 → 하늘 → 태양 → 그 너머 → 그 너머의 너머.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머리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언어로 답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독특한 논증법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방식은 이렇습니다.
"A란 무엇인가? A란 B이다."
정의를 내리는 것이죠.
야즈나발키아의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A란 무엇인가? A는 B가 아니다. A는 C도 아니다. A는 D도 아니다."
이것을 산스크리트어로 "네티 네티(neti neti)"라고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왜 이런 방식을 썼을까요?
우리가 커피숍에서 "이 커피 맛이 어때?"라고 물으면, 친구가 이렇게 답할 때가 있습니다.
"시큼하진 않고,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뭐랄까, 묘하게 좋아."
어떤 경험은 직접 정의하는 것보다, 아닌 것들을 제거했을 때 더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야즈나발키아는 이 원리를 우주의 궁극적 실체에 적용한 겁니다.
신은 크다? 아니다.
신은 작다? 아니다.
신은 보인다? 아니다.
신은 안 보인다? 그것도 아니다.
8명의 도전자는 하나씩 침묵했습니다.
그들의 질문 자체가 "A는 B다"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즈나발키아는 그 틀 자체를 부숴버린 것이죠.
자, 여기서 한 가지 실험을 해봅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내 몸이다."
정말요?
7년마다 우리 몸의 세포는 거의 전부 교체됩니다.
10살 때의 몸과 지금의 몸은 물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몸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느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몸이 아닙니다.
"나는 내 생각이다."
그럴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은 쉴 새 없이 바뀝니다.
아침에는 출근 걱정, 점심에는 메뉴 고민, 저녁에는 드라마 감상.
생각이 나라면, 나는 하루에도 수천 번 바뀌는 셈입니다.
그러면 나는 생각도 아닙니다.
"나는 내 감정이다."
역시 아닙니다.
슬픔이 올 때 "아, 내가 슬프구나"라고 알아차리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알아차리는 주체는 슬픔 자체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양파 비유입니다.
양파를 한 겹 한 겹 벗겨보세요.
첫 번째 껍질: 몸.
두 번째 껍질: 생각.
세 번째 껍질: 감정.
네 번째 껍질: 기억.
다섯 번째 껍질: 이름, 직업, 사회적 역할.
다 벗기면 뭐가 남습니까?
보통 양파는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하지만 야즈나발키아는 말합니다.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이 아트만(Atman)이다."
아트만은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영혼"이라고 하면 기독교적 뉘앙스가 섞이고, "자아"라고 하면 심리학적 뉘앙스가 섞입니다.
야즈나발키아가 말한 아트만은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보는 자를 볼 수 없고, 듣는 자를 들을 수 없고, 생각하는 자를 생각할 수 없다."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볼 수 없습니다.
아트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근본이지만, 그 자체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
이 개념이 3,00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완벽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야즈나발키아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카트야야니와 마이트레이.
어느 날, 야즈나발키아는 결심합니다.
모든 재산을 두 아내에게 나누어주고, 숲으로 떠나겠다고.
고대 인도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세속을 떠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를 "산냐사(출가)"라고 불렀습니다.
카트야야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재산을 받으면 넉넉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이트레이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 재산으로 영원히 살 수 있나요?"
야즈나발키아가 답합니다.
"아니. 부유한 사람의 삶을 살 수는 있지만, 재산으로 영원을 얻을 수는 없다."
마이트레이가 말합니다.
"그러면 영원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제가 뭘 하겠습니까.
당신이 아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대화는 수천 년 동안 인도 철학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전해져 왔습니다.
야즈나발키아는 마이트레이에게 아트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사랑스러운 것은 남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의 아트만 때문이다.
아내가 사랑스러운 것은 아내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의 아트만 때문이다.
재산이 소중한 것은 재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의 아트만 때문이다."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느낄 때, 실제로 좋아하는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내 안에서 일으키는 상태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커피 분자 때문이 아니라,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평온함 때문입니다.
그 평온함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안에 있던 것입니다.
마이트레이는 재산 대신 이 깨달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야즈나발키아와 함께 숲으로 떠났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재산이 나쁘다"가 아닙니다.
"재산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1637년,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모든 것을 의심해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
이것이 서양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즈나발키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그것도 데카르트보다 약 2,500년 전에.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에서 멈췄다면, 야즈나발키아는 물었습니다.
"그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여전히 생각이라는 활동에 묶여 있습니다.
야즈나발키아의 "나"는 생각조차 벗겨낸 그 너머를 가리킵니다.
현대 뇌과학이 흥미로운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뇌를 아무리 스캔해도 "나"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단일 지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신경세포들의 활동 패턴은 보이지만, 그것을 "나"로 경험하게 만드는 무언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은 이것을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고 부릅니다.
명상 연구에서도 비슷한 발견이 이어집니다.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 기법은 생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아, 지금 불안한 생각이 지나가는구나."
이때 관찰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이것이 야즈나발키아가 3,000년 전에 던진 바로 그 질문입니다.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름, 직업, 국적, 취향.
이것들을 다 벗겨내면?
야즈나발키아의 양파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3,000년 전 인도의 궁전에서 금빛 소를 놓고 벌어진 토론이 이렇게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야즈나발키아가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답을 구할수록 더 깊어집니다.
몸이 아니고, 생각이 아니고, 감정이 아니고, 이름이 아니라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읽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의식.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야즈나발키아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네티 네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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