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당신이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부모님이 숨겨버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열두 살 소년 블레즈 파스칼에게 그 금지된 물건은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수학책이었습니다.
파스칼의 아버지 에티엔은 아들이 언어와 고전 문학을 먼저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수학은 나중에, 충분히 성숙해지면 가르쳐주마 했죠.
그래서 집 안의 모든 수학책을 잠가버렸습니다.
소년은 뭔가 감추어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라면, 내가 직접 알아내면 되지."
파스칼은 책도 없이, 선생도 없이, 먼지 쌓인 바닥에 혼자 앉아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돌바닥 위에 분필로 선을 긋고, 각도를 재고, 삼각형과 원을 이리저리 비교했습니다.
몇 주가 지났을까요.
아버지가 방문을 열었을 때, 아들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핵심 정리를 혼자 다시 발견해놓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천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면, 잠깐 멈춰보세요.
파스칼이 위대했던 이유는 IQ가 높아서가 아니라,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마음을 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뭔가를 너무 알고 싶어서 잠 못 자던 밤이 있었을 겁니다.
파스칼은 그 마음을 평생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1654년, 파리의 어느 살롱.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카드 게임과 주사위 도박을 즐겼는데, 어느 날 이런 상황에 처했습니다.
친구 둘이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합니다.
먼저 세 번 이기는 사람이 판돈을 모두 가져가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2승, 다른 사람이 1승인 상태에서 갑자기 게임을 멈춰야 했습니다.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정할까요?
직관적으로는 2:1로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 메레는 뭔가 찜찜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가장 똑똑한 수학자에게 편지를 씁니다.
파스칼에게.
파스칼은 이 질문을 받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또 다른 천재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게임이 이미 끝났을 때의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어떨까?"
2승인 A는 한 번만 더 이기면 됩니다.
1승인 B는 두 번 더 이겨야 합니다.
앞으로 최대 두 번의 시합이 남았다면, 가능한 결과는 AA, AB, BA, BB — 네 가지입니다.
이 중 A가 이기는 경우는 AA, AB, BA — 세 가지입니다.
그러니 A에게 4분의 3, B에게 4분의 1을 주는 것이 공정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수학으로 계산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편지들이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확률론입니다.
인류는 그때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감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박꾼의 사소한 질문이 수학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피자를 주문하러 갔다고 상상해보세요.
토핑이 4가지 있습니다: 페퍼로니, 버섯, 올리브, 양파.
이 중에서 딱 2가지만 골라 토핑을 추가하고 싶다면, 몇 가지 조합이 가능할까요?
페퍼로니+버섯, 페퍼로니+올리브, 페퍼로니+양파, 버섯+올리브, 버섯+양파, 올리브+양파.
총 6가지입니다.
이 숫자가 어디서 나오는지 굳이 계산할 필요 없습니다.
파스칼의 삼각형을 보면 바로 나옵니다.
삼각형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맨 위에 1.
그 아래 줄에 1, 1.
다음 줄에 1, 2, 1.
다음 줄에 1, 3, 3, 1.
다음 줄에 1, 4, 6, 4, 1.
규칙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위의 두 숫자를 더하면 아래 숫자가 됩니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덧셈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삼각형 안에 무엇이 들어있냐면.
4가지 중 2가지를 고르는 경우의 수는 "4번째 줄의 가운데 숫자", 즉 6입니다.
정확히 아까 제가 손으로 센 숫자입니다.
여기서 멈추면 그냥 수학 교과서입니다.
하지만 파스칼의 삼각형에는 그 이상이 숨어 있습니다.
홀수인 칸만 색칠해보세요.
그러면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이라는 프랙탈 패턴이 나타납니다.
우주의 눈송이, 해안선, 고사리 잎에서도 보이는 그 패턴이.
각 줄의 숫자를 모두 더해보세요.
1, 2, 4, 8, 16, 32... 2의 제곱수가 줄줄이 나옵니다.
피보나치 수열도 숨어있습니다.
대각선 방향으로 숫자를 따라가면 1, 1, 2, 3, 5, 8, 13... 그 유명한 수열이 나옵니다.
파스칼이 이 삼각형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500년 전에 비슷한 것을 알고 있었고, 인도와 페르시아에서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삼각형의 수많은 성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확률론에 연결한 사람이 파스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덧셈만 할 줄 아는 삼각형이 세상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것.
수학이 마법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판기 앞에 서 있습니다.
음료 버튼을 눌렀는데, 기계 안에서 뭔가 굴러가는 소리가 납니다.
근데 나오지 않습니다.
한 번 더 눌러볼까요, 아니면 그냥 돈을 날릴까요?
버튼 한 번 누르는 데 드는 비용은 단 몇 초의 손가락 수고입니다.
만약 진짜로 음료가 나온다면? 횡재입니다.
그러니 눌러보는 게 이득입니다.
파스칼은 이 논리를 신에게 적용했습니다.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살 것인가, 없다고 믿고 살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표를 그렸습니다.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믿은 사람은 천국을 얻습니다 — 무한한 이득.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 무한한 손해.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믿은 사람은 교회에 간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 유한한 손해.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습니다 — 유한한 이득.
결론: 신을 믿는 쪽이 기댓값이 훨씬 높습니다.
파스칼의 내기라고 불리는 이 논증입니다.
이게 설득력 있어 보이나요?
철학자들은 300년째 이 논증을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데? 신이 수천 가지인데, 틀린 신을 믿으면 더 나쁜 것 아닌가?"
"진심도 없이 믿는 척하는 게 신을 속이는 것 아닌가?"
"무한한 이득이라는 개념 자체가 계산 가능한가?"
파스칼 자신도 이것이 완벽한 논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을 계산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기를 원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믿는 사람들처럼 행동해보라."
행동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논증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불확실 속에서 살면서도 매일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다."
확률론을 만든 사람이 가장 큰 불확실성 앞에서도 같은 도구를 꺼내든 것입니다.
기댓값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려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그렇게 합니다.
"이 사람을 믿어볼까?"
"이 회사에 투자할까?"
"이 길로 가면 어떻게 될까?"
모든 선택은 파스칼의 내기입니다.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찾는 것.
스마트폰을 꺼내 날씨 앱을 열어보세요.
"오늘 오후 비 올 확률 70%"라는 문구가 보이나요.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대기 데이터를 집어넣고, "이런 조건에서 비가 왔던 경우가 70%였다"고 계산한 겁니다.
과거의 수천 번 경험을 토대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확률로 표현하는 것.
파스칼과 페르마가 편지로 처음 논의한 바로 그 아이디어입니다.
기압계를 발명한 사람도 파스칼입니다.
그는 산에 올라갈수록 공기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기압의 단위를 파스칼(Pa)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타이어 공기압 확인할 때 나오는 그 단위입니다.
프로그래머라면 익숙한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언어 이름이 Pascal입니다.
구조적이고 교육적인 언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개발자들이 이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웠습니다.
보험도 파스칼의 자녀입니다.
"1000명 중 몇 명이 교통사고를 당하는가"를 계산해 보험료를 매기는 것.
확률론 없이는 불가능한 산업입니다.
카지노도,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도, 코로나19 감염 모델도 모두 같은 뿌리에서 왔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숫자로 다루는 능력.
그 능력의 씨앗을 한 도박사의 편지 질문이 심었습니다.
파스칼은 3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병을 달고 살았고, 30대 초반부터는 거의 수도사처럼 금욕적으로 지냈습니다.
남긴 글들은 그가 죽은 후에 발견됐는데, 조각 종이들에 휘갈겨 쓴 메모들이었습니다.
그 메모들을 모아 엮은 것이 《팡세(Pensées)》입니다.
그 메모들 중 하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한 존재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우주가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증기 한 방울, 물 한 모금으로도.
하지만 우주는 인간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인간은 죽으면서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 앎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열두 살에 바닥에 삼각형을 긁던 소년.
도박사의 편지에 흥분한 수학자.
자판기 논리로 신을 설득하려 한 철학자.
39년을 살다 간 생각하는 갈대.
그가 남긴 생각들은 오늘도 당신의 스마트폰 안에서, 타이어 압력계 안에서, 보험 약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마음.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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