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난 늦은 밤, 한 남자가 악기 케이스를 들고 집에 돌아옵니다.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는 대신, 그는 창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이 유난히 많은 밤이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윌리엄 허셜.
1738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는 군악대에서 오보에와 플루트를 연주하는 평범한 음악가였습니다.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바스(Bath)라는 도시에서 음악 교사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레슨비를 아껴 모으고, 교회 오르간 연주로 푼돈을 벌며 살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허셜은 도서관에서 천문학 책 한 권을 빌려 읽습니다.
로버트 스미스의 《광학 완전 체계》라는, 제목만으로도 잠이 올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허셜은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음악가에게 별은 낯선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점과 선의 패턴 속에서 질서를 찾는 일입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처럼 흩어진 별들 사이에서 규칙과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일.
허셜에게 별 관측은 새로운 악보를 해독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망원경이 너무 비쌌습니다.
음악 교사의 월급으로는 제대로 된 망원경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셜은 놀라운 결심을 합니다.
"사지 못하면 만들면 된다."
망원경을 직접 만든다니, 무모해 보입니다.
하지만 허셜에게는 음악가로 단련된 한 가지 능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끈기입니다.
당시 좋은 망원경의 핵심은 렌즈가 아니라 거울이었습니다.
반사망원경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오목한 금속 거울로 빛을 모아 멀리 있는 것을 크게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돋보기를 써본 적 있나요?
햇빛을 한 점에 모으면 종이가 탈 정도로 뜨거워지죠.
반사망원경의 거울도 비슷합니다.
별빛을 한 점에 모아서, 우리 눈이 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빛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문제는 이 거울을 만드는 과정이 지독하게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든 금속 원판을 손으로 갈아야 했습니다.
표면이 조금이라도 울퉁불퉁하면 별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손톱 두께의 절반만큼만 틀어져도 실패입니다.
허셜은 이 과정을 200번 넘게 반복했습니다.
하루에 16시간씩 거울을 갈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너무 오래 작업해서 손을 뗄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이 숟가락으로 음식을 그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캐롤라인은 단순한 조수가 아니었습니다.
오빠가 밤하늘을 관측할 때, 그녀는 옆에서 관측 기록을 적고, 계산을 하고, 별 목록을 정리했습니다.
나중에는 혼자서 혜성 8개를 발견할 만큼 뛰어난 천문학자가 됩니다.
역사상 최초로 과학적 업적으로 왕실 연봉을 받은 여성이기도 합니다.
남매의 집은 망원경 공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거실에는 금속 가루가 쌓이고, 부엌에서는 거울 주조용 화덕이 돌아갔습니다.
이웃들은 이상한 집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이 지저분한 거실에서 탄생한 망원경은, 당대 유럽 어느 천문대의 것보다 성능이 좋았습니다.
1781년 3월 13일.
이 날짜는 인류가 수천 년간 믿어온 우주의 크기를 바꾼 밤입니다.
그날도 허셜은 늘 하던 대로 밤하늘을 관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별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방식으로 관측했습니다.
음악가가 악보를 한 음 한 음 짚어가듯, 하늘을 체계적으로 스캔한 것입니다.
쌍둥이자리 근처를 살피던 중,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별들은 점처럼 보이는데, 하나만 동그란 원반처럼 보였습니다.
"혜성인가?"
허셜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다시 관측하자, 그 물체는 위치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별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성과 혜성은 움직입니다.
허셜은 이것을 혜성으로 보고 학회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유럽 각지의 수학자들이 이 물체의 궤도를 계산해보니, 혜성이 아니었습니다.
혜성은 길쭉한 타원이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하지만 이 물체는 태양 주위를 거의 원에 가까운 궤도로 돌고 있었습니다.
행성만이 그런 궤도를 가집니다.
새로운 행성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은 다섯 개뿐이었습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알았고, 그리스 사람들도 알았고, 조선의 천문관도 알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행성은 다섯 개"가 상식이었습니다.
허셜이 그 상식을 깨뜨렸습니다.
토성 너머에 여섯 번째 행성이 있었던 겁니다.
이 행성은 나중에 천왕성(Uranus)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소식을 들은 영국 왕 조지 3세는 감격했습니다.
음악 교사였던 허셜을 "왕의 천문학자"로 임명하고, 연봉을 지급했습니다.
허셜은 더 이상 레슨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이제 온전히 별만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허셜의 호기심은 행성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집니다.
"태양 빛의 색깔마다 온도가 다를까?"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빨강에서 보라까지 일곱 가지 색이 보입니다.
프리즘이라는 유리 삼각기둥에 햇빛을 통과시키면 이 색들을 나란히 펼칠 수 있습니다.
뉴턴이 이미 100년 전에 보여준 실험이었습니다.
허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각 색깔 위에 온도계를 올려놓고 온도를 측정한 것입니다.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색이 빨간색으로 갈수록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빨간색 바깥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빨간색 바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눈에는 그냥 어둠뿐입니다.
허셜은 그 어둠 속에 온도계를 놓아보았습니다.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도계는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외선의 발견입니다.
1800년의 일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빛이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 눈이 감지하지 못하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류가 처음 알게 된 순간입니다.
이 발견이 왜 대단한 걸까요?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피아노를 치는데, 가운데 옥타브 건반만 소리가 난다고 상상해보세요.
오른쪽 높은 음도, 왼쪽 낮은 음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낮은 건반을 눌렀더니 컵 속의 물이 흔들리는 겁니다.
소리는 안 들리지만, 분명 무언가가 진동하고 있었던 거죠.
허셜이 한 일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빛의 피아노에서 보이지 않는 건반을 발견한 겁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빨간색 바깥의 적외선뿐 아니라, 보라색 바깥의 자외선, 엑스선, 전파까지 찾아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리모컨, 열화상 카메라, 적외선 체온계는 모두 허셜이 열어젖힌 문 너머에 있던 것들입니다.
허셜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전문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과학 학위도 없었습니다.
그는 플루트를 불고, 오르간을 치고, 작곡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음악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발견이었습니다.
음악가는 아주 작은 음의 차이를 구별합니다.
미세하게 음이 틀어져도 귀가 즉각 반응합니다.
허셜이 밤하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별 하나의 미세한 차이를 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점이 아니라 원반이다."
그 작은 차이가 천왕성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음악가는 또한 반복 연습에 익숙합니다.
한 곡을 수백 번 연주해야 완벽해진다는 것을 몸으로 압니다.
거울을 200번 넘게 갈 수 있었던 끈기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허셜은 천왕성 발견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500개가 넘는 성운과 성단을 목록으로 정리했고, 태양계가 우주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냈습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 말고도 다른 은하가 있을 수 있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한 것도 허셜이었습니다.
이 가설은 100년 뒤에야 사실로 증명됩니다.
캐롤라인은 오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관측 기록을 정리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허셜의 아들 존 허셜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반구 하늘까지 관측을 확장했습니다.
한 가족이 인류의 우주 지도를 넓힌 셈입니다.
오늘날 우주 저 멀리, 태양에서 약 29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천왕성이 조용히 태양을 돌고 있습니다.
240년 전, 영국의 작은 마당에서 손수 만든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음악가가 처음 눈치챈 그 창백한 점.
허셜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천문학만이 아닙니다.
살 수 없으면 만들면 되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눈이, 전문가들이 수천 년간 놓친 것을 발견한다는 것.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맨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왕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거기 있습니다.
플루트 부는 남자가 발견한 그 행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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