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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리드의 자연적 기호는, 감각(기호)이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도, 우리 마음이 타고난 본성의 원리에 따라 곧장 그 대상의 개념과 믿음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말해요. 닮음이 아니라 '가리킴'이 지각을 떠받친다는 뜻이에요.
부엌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면 우리는 곧바로 "불이야" 하고 생각하죠.
냄새는 불이 아니고, 불을 조금도 닮지도 않았는데, 냄새 하나로 마음은 불의 존재를 믿어 버려요.
토머스 리드(Thomas Reid, 1710~1796)가 말한 자연적 기호(natural signs)가 바로 이 장면이에요.
어떤 감각이 그것과 전혀 안 닮은 바깥 세계를 가리키고, 우리는 그 가리킴을 따라 곧장 믿음으로 건너가요.
리드는 이 건너가기를 '암시(suggestion)'라고 불러요.
하나의 감각이 자동으로 다른 것의 개념과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에요.
홍조가 부끄러움을 암시하고, 글자가 그 뜻을 암시하듯이요.
핵심은 이거예요.
감각은 대상을 닮을 필요가 없어요.
마치 '불'이라는 글자가 불꽃처럼 뜨겁지 않아도 불을 뜻하는 것처럼, 감각도 닮지 않고 그냥 가리키기만 하면 돼요.
리드는 우리가 유창하게 글을 읽을 때 글자 모양이 아니라 곧바로 뜻에 주의를 두듯, 감각을 만날 때도 감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신호하는 바깥 성질로 주의가 곧장 향한다고 봤어요.
리드보다 앞선 데카르트와 로크는 우리가 세상을 '관념(idea)'이라는 중간 그림을 통해서만 안다고 봤어요.
흄은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관념은 앞선 감각 인상을 베낀 것이라는 모상 원리를 세우고, 결국 바깥 세계를 정말 아는지 의심할 수 있다고 했죠.
리드는 이 '관념의 길(way of ideas)'에 반대했어요.
감각이 대상을 닮은 그림이어야 한다면, 안 닮은 감각은 아무것도 못 알려주겠죠.
그런데 자연적 기호는 닮지 않아도 신뢰할 만하게 대상을 가리켜요.
리드가 든 결정적인 예가 손으로 느끼는 딱딱함이에요.
딱딱함의 촉각 감각은 '딱딱함'이라는 성질과 조금도 안 닮았지만, 그 감각을 받는 순간 우리는 그전에 아무 관념이 없었어도 즉시 딱딱한 무언가가 저기 있다고 믿어요.
리드는 이걸 두고 자연적 기호가 대상을 "do suggest it, or conjure it up, as it were, by a natural kind of magic"(자연적인 일종의 마술처럼 불러일으킨다)이라고 적었어요.
여기서 '마술'은 진짜 요술이 아니라, 그 과정이 더 쪼갤 수 없을 만큼 즉각적이고 근원적이라는 비유예요.
리드는 『인간 지성의 힘에 관한 논고』(1785) 2논고 16장에서 자연적 기호를 세 부류로 나눠요.
얼마나 배워야 알아채는지가 기준이에요.
| 부류 | 어떻게 알게 되나 | 예 |
|---|---|---|
| 경험형 | 살면서 겪어 봐야 연결을 앎 | 연기는 불의 기호, 특정 구름은 비의 기호 |
| 본능형 | 태어날 때부터 알아봄 | 표정, 목소리 톤, 웃음 |
| 마술형 | 배움 없이 즉각 작동 | 딱딱함의 촉각 감각 |
둘째 부류를 리드는 "the natural language of mankind"(인류의 자연 언어)라고 불렀어요.
갓난아기도 화난 얼굴과 웃는 얼굴을 배우지 않고 알아채듯, 표정과 말투는 온 인류가 공유하는 타고난 언어라는 뜻이에요.
한편 리드는 마음이 기호에서 믿음으로 건너가는 '경로'도 셋으로 나눠요.
"by original principles of our constitution, by custom, and by reasoning"(본성의 근원적 원리로, 관습으로, 그리고 추론으로)이죠.
이건 위의 세 부류와는 다른 목록이에요.
하나는 기호의 종류를 나눈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생기는 방식을 나눈 거라, 서로 일대일로 맞아떨어진다고 단정하지는 않는 게 좋아요.
리드는 기호를 자연적 기호와 인공적 기호 둘로 나눠요.
신호등의 빨간불이나 우리가 쓰는 단어가 인공적 기호예요.
이런 기호는 "no meaning but what is affixed to them by compact or agreement", 즉 쓰는 사람들끼리 합의하고 약속해야만 뜻을 가져요.
| 견주는 점 | 자연적 기호 | 인공적 기호 |
|---|---|---|
| 뜻의 근거 | 타고난 본성의 원리 | 사람들 사이 합의·약속 |
| 미리 배워야 하나 | 적어도 마술형은 필요 없음 | 반드시 필요 |
| 예 | 연기, 표정, 딱딱함의 감각 | 단어, 신호등 |
여기서 리드의 날카로운 논증이 나와요.
인공언어가 성립하려면 먼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합의 자체가 이미 어떤 의사소통을 필요로 해요.
말을 맞추려면 이미 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인공언어보다 앞선 자연 언어, 곧 자연적 기호 체계가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름이 '자연적'이라 학습이나 합의로 만들어진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리드가 강조한 건 정반대예요.
특히 마술형 기호는 어떤 사전 경험도 합의도 없이 곧바로 작동해요.
우리는 하루 종일 자연적 기호를 읽으며 살아요.
친구 목소리가 조금 떨리면 무슨 일 있냐고 묻고, 창밖 먹구름을 보고 우산을 챙기죠.
그 순간 우리는 소리의 파형이나 구름의 물방울을 따로 추론하지 않아요.
곧바로 감정과 비를 믿어 버려요.
리드는 이 즉각적인 신뢰가 착각이 아니라, 우리 지각이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결과라고 봤어요.
이 생각은 관념이라는 매개 없이 마음이 바깥 성질로 곧장 닿는다는 그의 직접 실재론과 이어져요.
우리가 세상을 안다는 상식적 확신을 흄의 의심 앞에서 지켜 내려는 시도였던 셈이에요.
리드의 자연적 기호는 세 문장으로 잡을 수 있어요.
첫째, 감각은 대상을 닮지 않아도 그것을 가리킬 수 있고, 마음은 그 가리킴을 따라 곧장 믿음으로 건너가요(암시).
둘째, 자연적 기호에는 경험으로 아는 것, 본능으로 아는 인류의 자연 언어, 그리고 배움 없이 즉각 작동하는 마술형이 있어요.
셋째, 합의가 필요한 인공적 기호와 달리 자연적 기호는 타고난 본성이 그 뜻을 정해요.
매캐한 냄새 하나에 불을 믿는 그 평범한 순간이, 리드가 지키려 한 지각의 신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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