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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슬로터다이크는 인간이 맨몸으로는 세상을 견디지 못한다고 봐요. 그래서 문화가 우리 몸의 면역처럼 바깥의 충격을 막고 우리를 길러내는 보호막, 곧 '온실' 노릇을 한다는 뜻이에요.
감기 기운이 돌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면역이 몸속에서 나쁜 걸 걸러내요.
덕분에 우리는 평소에 그런 싸움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죠.
독일 철학자 피터 슬로터다이크(1947년 6월 26일 카를스루에 출생)는 문화가 바로 그런 면역 같은 거라고 말해요.
생각해 보면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예요.
추위, 배고픔, 무서움을 혼자 못 이겨요.
그런데도 인간이 살아남은 건, 가족과 언어와 습관과 이야기가 아기를 폭신하게 감싸주기 때문이에요.
슬로터다이크는 이렇게 우리를 감싸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구체(Sphäre)'라고 불러요.
문화란 결국 우리가 서로를 지켜주려고 만든 커다란 보호막인 셈이죠.
슬로터다이크는 『구체(Sphären)』라는 세 권짜리 책을 썼어요.
독일어 원서로 1권 『거품들(Blasen)』이 1998년, 2권 『구들(Globen)』이 1999년, 3권 『포말들(Schäume)』이 2004년에 나왔어요.
(영어 번역판은 이보다 한참 뒤에 나왔으니 연도를 헷갈리면 안 돼요.)
이 책의 재미난 점은 질문을 바꿔버린 거예요.
앞선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물었는데, 슬로터다이크는 이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로 바꿔요.
사람은 혼자 붕 떠 있는 게 아니라 늘 어떤 공간 안에 담겨 산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형태를 만드는 이야기이고, 서로 손잡는 모든 행동은 함께 있을 안쪽 공간을 짓는 일'이라고 말해요.
방울이 서로 붙어 거품 뭉치가 되듯, 사람도 서로 붙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그림이에요.
1999년 슬로터다이크는 엘마우 성에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Regeln für den Menschenpark)'이라는 강연을 했어요.
여기서 그는 문화와 문명을 인간을 길러내는 '인위적 온실'에 빗대요.
추운 겨울에도 온실 안에서는 토마토가 자라잖아요.
밖에서라면 얼어 죽었을 여린 싹이 유리벽 덕분에 살아나죠.
슬로터다이크가 보기에 문화도 그런 온실이에요.
자연 그대로였다면 험한 세상에 짓눌렸을 사람이, 교육과 예절과 이야기라는 유리벽 안에서 비로소 사람다워진다는 거예요.
다만 이 강연은 큰 논쟁을 불렀어요.
같은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 쪽에서 그를 강하게 비판했고, '파시스트'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어요.
하지만 이건 한쪽의 비판이지 학계가 합의한 평가는 아니에요.
슬로터다이크 본인은 자기 말이 맥락 없이 왜곡됐다고 반박했고, 해석은 지금도 갈려요.
슬로터다이크의 첫 대표작은 1983년에 나온 『냉소적 이성 비판(Kritik der zynischen Vernunft)』이에요.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철학책으로 꼽혀요.
그는 여기서 오늘날의 냉소주의를 '계몽된 허위의식'이라 불러요.
옳은 게 뭔지 다 알면서도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뀌어' 하고 실천은 안 하는 마음이죠.
똑똑한데 불행한 상태예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슬로터다이크를 냉소주의자로 오해한다는 점이에요.
사실은 반대예요.
그는 옛 그리스의 견유주의를 대안으로 내밀어요.
두 낱말은 원어에서 첫 자음이 달라요.
| 구분 | 원어 | 태도 |
|---|---|---|
| 견유주의 | Kynismus | 디오게네스처럼 몸으로 부딪쳐 권력을 비웃음 |
| 냉소주의 | Zynismus | 다 알면서도 시장 논리에 순응하는 무기력 |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거나 광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볼일을 본 일화를, 슬로터다이크는 몸 자체가 비판을 실천한 '이성의 이른 절정'이라 봐요.
말싸움 대신 삶으로 대드는 거죠.
2009년 책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꿔야 한다(Du mußt dein Leben ändern)』의 제목은 사실 릴케의 시 마지막 행을 그대로 빌린 거예요.
슬로터다이크는 이 문장을 우리 모두를 향한 명령처럼 읽어요.
사람은 훈련과 연습으로 자기를 바꾸는 존재이고, 그는 이 자기변형 기술을 '인간공학(Anthropotechnik)'이라 불러요.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습관과 수련으로 스스로를 빚는다는 뜻이죠.
슬로터다이크는 인간을 혼자 강한 영웅이 아니라, 보호막이 있어야 사는 여린 존재로 봐요.
그 보호막이 바로 문화예요.
문화는 몸의 면역처럼 우리를 감싸고(구체), 온실처럼 우리를 길러내요.
그는 다 알면서 포기하는 냉소(Zynismus) 대신, 몸으로 부딪치는 견유(Kynismus)의 용기를 권해요.
그러니 '면역으로서의 문화'란, 우리가 사람답게 살도록 서로 지어준 따뜻한 안쪽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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