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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행동이 옳은지 따지려면, 그 행동을 허용하는 규칙을 다 함께 지킬 규칙으로 내놓았을 때 누군가가 합당한 이유로 그 규칙을 거부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돼요. 아무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규칙만 옳고, 누군가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규칙은 그른 거예요.
미국 시트콤 《굿 플레이스》를 본 적 있나요?
죽은 뒤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나뉘는 세계를 다룬 코미디인데, 여기 진짜 철학책 한 권이 계속 등장해요.
바로 토머스 스캔런의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What We Owe to Each Other)』이에요.
시즌1 6화의 제목이 아예 이 책 이름을 땄고, 시즌2 마지막 회와 시리즈 최종화에서도 이 책의 아이디어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쓰여요.
그 아이디어를 한 줄로 말하면 이래요.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빚지고 있고, 그 빚의 내용은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에서 나온다."
다르게 말하면, 나 혼자 옳다고 우기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느냐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다는 거죠.
토머스 마이클 '팀' 스캔런은 1940년 6월 28일에 태어난 미국 철학자예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자랐고, 1962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1968년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재미있는 건 처음엔 윤리학이 아니라 수리논리학(증명론)을 연구했다는 점이에요.
이후 관심을 도덕과 정치철학으로 옮겼죠.
1984년부터 하버드에서 가르쳤고, 1993년에는 이른바 '천재 지원금'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로 뽑혔어요.
대표작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은 1998년에 나왔고요.
그는 존 롤스, 칸트, 루소로 이어지는 계보 위에서 자기만의 '계약주의(contractualism)'를 발전시켰어요.
계약이라고 하면 종이에 도장 찍는 걸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서는 다른 뜻이에요.
친구들끼리 게임 규칙을 정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 "이건 나한테만 불리하잖아"라고 정당한 이유를 대면, 그 규칙은 채택되기 어렵죠.
반대로 아무도 딱히 반박할 수 없는 규칙이라면 다 같이 받아들이게 되고요.
스캔런은 옳고 그름을 바로 이렇게 봐요.
그가 그름을 정리한 유명한 문장은 이래요.
"An act is wrong if any principle that permitted it would be one that could reasonably be rejected by people... who could not reasonably reject it."
풀어 쓰면, 어떤 행동을 허용하는 규칙을 두고 '모두가 함께 지킬 규칙'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중 누군가가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규칙이라면 그 행동은 그르다는 거예요.
왜 이런 기준을 지켜야 할까요?
스캔런은 그 힘이 "the positive value of a way of living with others", 곧 '남들과 함께 사는 삶이 지닌 긍정적 가치'에서 나온다고 봐요.
서로에게 떳떳하게 이유를 댈 수 있는 관계 자체가 값지다는 거죠.
가장 헷갈리기 쉬운 상대가 공리주의예요.
둘 다 좋은 사회를 말하지만 계산법이 전혀 달라요.
| 구분 | 공리주의 | 스캔런의 계약주의 |
|---|---|---|
| 판단 기준 | 전체 이익의 합이 큰가 | 각자가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 |
| 이유를 다루는 법 | 여러 사람 이익을 합산 | 개인 단위로만 비교, 합산 안 함 |
| 소수의 처지 | 다수를 위해 희생될 수 있음 | 한 사람의 거부 이유도 그대로 무게를 가짐 |
스캔런은 여러 사람의 이유를 합쳐서 '다수가 이득이니 됐다'고 밀어붙이는 걸 허용하지 않아요.
거부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 단위로 따져요.
그래서 아홉 명이 좋다고 해도, 한 명이 정말 합당한 이유로 거부한다면 그 규칙은 그냥 통과되지 않아요.
세 가지만 짚을게요.
첫째, 스캔런의 계약주의는 도덕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에요.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이라는 한정된 영역, 즉 우리가 이성적 존재로서 서로에게 지는 의무만 다뤄요.
친구나 가족에 대한 특별한 마음, 자연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건 더 넓은 도덕의 몫으로 따로 둡니다.
둘째, 롤스·칸트·루소를 잇는다고 소개되지만, 정작 스캔런은 「내가 왜 칸트주의자가 아닌가(How I Am Not a Kantian)」라는 글까지 써서 자신을 순수 칸트주의와 똑같이 보지 말라고 밝혔어요.
셋째, 그는 인간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그러니 생명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계산하지 않아요.
가치를 최대화하는 목적론과는 선을 긋죠.
스캔런의 계약주의는 옳고 그름을 '남들이 납득할 수 있느냐'로 되묻는 사고방식이에요.
아무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규칙만 옳고, 누군가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규칙은 그르다는 것, 그리고 그 판단을 다수결이나 이익 합산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유로 따진다는 것.
《굿 플레이스》가 웃음 속에 계속 들이민 질문도 결국 같아요.
나는 지금 상대에게 떳떳하게 이유를 댈 수 있는 규칙으로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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