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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것을 '좋다'고 부를 때, '좋음'이라는 성질이 스스로 나서서 그것을 아끼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지닌 다른 구체적 성질들이 우리에게 아낄 이유를 준다는 뜻이에요. '좋음'은 그 진짜 일을 하는 이유들을 가리켜 보이며 자기 몫을 넘겨줄 뿐이죠.
미국 시트콤 《굿 플레이스》에는 한 철학책이 계속 등장해요.
토머스 스캔런(1940년생)의 『What We Owe to Each Other』(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 1998)입니다.
시즌1 6화 제목이 이 책에서 왔고, 마지막 화까지 그의 생각이 이야기의 뼈대로 쓰였죠.
그 스캔런의 유명한 물음 하나가 바로 '가치 떠넘기기 논변'이에요.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해요.
우리가 무언가를 "좋다"고 말할 때, '좋음'이라는 성질이 직접 앞으로 나와서 "그러니 나를 아껴!"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대신 그것이 지닌 다른 구체적 성질들이 우리에게 이유를 줍니다.
케이크로 생각해 볼게요.
"이 케이크 맛있어"라고 할 때, '맛있음' 자체가 손을 뻗게 만드는 게 아니죠.
촉촉함, 은은한 단맛, 좋은 향 같은 실제 성질들이 "한 입 먹어"라고 이유를 줍니다.
'맛있다'는 그 이유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표일 뿐이에요.
그래서 '맛있음'은 진짜 일을 하는 성질들에게 슬쩍 자리를 넘깁니다.
이 넘기는 몸짓, 영어로 '책임을 떠넘긴다(passing the buck)'를 따서 '가치 떠넘기기'라고 불러요.
그럼 스캔런은 무엇을 세상의 바닥에 두었을까요.
'가치'가 아니라 '이유(reason)'예요.
그는 2009년 옥스퍼드 존 로크 강연에서, 그리고 2014년 책 『Being Realistic about Reasons』에서 '이유 근본주의(reasons fundamentalism)'를 내세웠어요.
"there are irreducibly normative truths about reasons for action."
우리말로 풀면, 행위의 이유에 관해서는 더 이상 다른 것으로 쪼갤 수 없는 규범적 진리가 있다는 말이에요.
이유가 가장 밑바닥에 있으니, '좋음'은 그 위에 얹힌 이름표가 됩니다.
무언가가 좋다는 말은 결국 "여기 너에게 이유를 주는 성질들이 있어, 쟤들한테 물어봐"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셈이죠.
좋음이 스스로 명령하는 게 아니라, 이유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준다는 것.
이게 떠넘기기 논변이 노리는 지점이에요.
스캔런은 이 생각을 도덕으로 이어 계약주의(contractualism)를 세웠어요.
그의 옳고 그름 정식은 이래요.
"An act is wrong if and only if any principle that permitted it would be one that could reasonably be rejected..."
어떤 행동이 그른 것은, 그 행동을 허용하는 원칙을 서로가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을 때라는 뜻이에요.
쉽게 말해, 도덕은 하늘에서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이 규칙, 서로 받아들일 수 있어?" 하고 각자가 내놓는 이유들을 견줘 정한다는 거죠.
여기서도 바닥에 있는 건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견주는 방식이 공리주의와 크게 달라요.
| 견주는 방식 | 공리주의 | 스캔런의 계약주의 |
|---|---|---|
| 이유를 어떻게 세나 | 여러 사람 이익을 합산해 총합을 본다 | 사람마다 따로, 개인 단위로만 견준다 |
| 다수를 위한 희생 | 총합이 크면 정당화될 수 있다 | 합산을 허용하지 않아 함부로 밀리지 않는다 |
한 사람의 억울함이 '더 큰 다수의 행복'이라는 총합에 묻히지 않도록, 스캔런은 이유를 개인별로만 저울에 올려요.
몇 가지는 짚고 가야 해요.
첫째, 이 이론은 도덕 전체를 설명하지 않아요.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이라는 한정된 영역만 다루고, 친구·가족에 대한 특별한 의무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더 넓은 도덕에 속해 별개로 봅니다.
둘째, 인간 생명이 가치 있다고 해서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지 않아요.
가치를 최대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셋째, 그는 존 롤스·칸트·루소의 계보에 놓이지만, 「How I Am Not a Kantian」이라는 글을 직접 써서 자신을 순수 칸트주의와 똑같이 보지 말라고 선을 그었어요.
스캔런의 가치 떠넘기기 논변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좋음'은 스스로 명령하는 힘이 아니라, 진짜 이유를 주는 구체적 성질들을 가리키는 이름표라는 것.
케이크가 맛있다는 말이 촉촉함과 단맛에게 자리를 넘기듯, 가치는 이유에게 발언권을 넘깁니다.
그리고 도덕에서는 그 이유들을 사람마다 따로 견주어, 서로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을 찾는 일로 이어지죠.
다수의 행복 총합에 한 사람이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이 논변이 하려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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