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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행동이 옳으려면 그 행동을 허용하는 원칙을 아무도 '합당한 이유'로 거부할 수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단 한 사람이라도 정당하게 "난 이건 못 받아들여"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 원칙은 탈락이에요.
친구들과 새 보드게임 규칙을 정한다고 해볼게요.
누군가 "진 사람은 간식을 다 뺏긴다"고 제안하면, 꼭 한 명은 "그건 너무하잖아" 하고 정당하게 반대하죠.
그런 규칙은 통과되지 못해요.
반대로 아무도 억울해할 이유가 없는 규칙만 살아남아요.
미국 철학자 토머스 스캔런(Thomas M. Scanlon, 1940년생)이 도덕을 설명하는 방식이 딱 이 놀이터 장면과 닮았어요.
스캔런은 옳고 그름을 이렇게 정리해요.
"An act is wrong if and only if any principle that permitted it would be one that could reasonably be rejected by people..."
풀면, 어떤 행동이 그른 이유는 그 행동을 허용하는 원칙을 사람들이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뒤집어 말하면, 서로 합의할 규칙을 찾는 사람들 중 아무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 그것만이 옳은 규칙이 돼요.
핵심은 '합당하게(reasonably)'라는 말이에요.
그냥 떼쓰는 반대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그럴 만하네" 싶은 이유가 있어야 해요.
스캔런은 1998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낸 대표작 『What We Owe to Each Other』,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에서 이 생각을 폈어요.
그는 존 롤스, 칸트, 루소로 이어지는 계약주의(contractualism) 계보에 서 있어요.
계약주의는 도덕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정당화할 수 있는 약속으로 봐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약속을 지켜야 할까요?
스캔런은 그 힘이 "the positive value of a way of living with others", 곧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이 가진 긍정적 가치에서 나온다고 봐요.
나 혼자 이기고 마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떳떳하게 이유를 댈 수 있는 관계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거죠.
재미있게도 이 책은 시트콤 《The Good Place》에도 여러 번 나와요.
시즌1 6화 제목이 바로 이 책 제목이고, 마지막 화에서도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나'라는 물음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뤄요.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다수가 좋으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에요.
스캔런은 분명히 선을 그어요.
그는 여러 사람의 이익을 하나로 합산(aggregation)하지 않아요.
원칙을 거부할 수 있는지는 오직 '한 사람 한 사람' 단위로 따져요.
| 공리주의 | 스캔런의 계약주의 | |
|---|---|---|
| 기준 | 전체 이익의 합이 큰가 | 아무도 합당하게 거부 못 하나 |
| 계산 방식 | 여러 사람 이익을 합산 | 개인별로 따로 비교 |
| 소수의 처지 | 다수에 묻힐 수 있음 | 한 사람의 반대도 힘을 가짐 |
예를 들어 열 명이 조금씩 편해지려고 한 명에게 큰 손해를 지운다고 해볼게요.
공리주의는 합이 이득이면 괜찮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스캔런은 그 한 명이 "내가 왜 그걸 감수해야 하죠?"라고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면, 그 원칙은 통과되지 못한다고 봐요.
숫자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거예요.
한 가지 오해는 풀고 가야 해요.
스캔런의 계약주의는 도덕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에요.
그가 다루는 건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이라는 한정된 영역, 곧 사람들이 이성적 존재로서 서로에게 지는 의무예요.
친구나 가족에 대한 특별한 마음, 자연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건 더 넓은 도덕에 속하는 별개 문제라고 스스로 못 박았어요.
칸트와도 거리를 뒀어요.
롤스·칸트·루소 계보를 잇는다고 소개되지만, 스캔런은 2011년 「How I Am Not a Kantian」, 곧 '나는 어떻게 칸트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자기 입장을 순수 칸트주의와 같게 보지 말라고 직접 밝혔어요.
그가 던지는 물음은 오늘도 쓸모가 있어요.
어떤 규칙을 만들 때 "이걸 가장 손해 보는 사람에게도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나?"라고 스스로 묻게 하니까요.
스캔런의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옳은 규칙은 다수가 좋아하는 규칙이 아니라, 누구 한 사람도 정당하게 "난 못 받아들여"라고 말할 수 없는 규칙이에요.
그 힘은 서로에게 이유를 대며 함께 사는 삶의 가치에서 나오고, 판단은 늘 개인 단위로 이뤄져요.
다수의 이익으로 한 사람을 묻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게 스캔런이 도덕에 그어놓은 가장 또렷한 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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