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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들은 여럿이고 서로 부딪치는데, 그것들을 한 줄로 세워 잴 공통의 잣대가 없어서 "이게 정답"이라고 정해 줄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얻으려 다른 무언가를 조금 포기하며 골라 살아가요.
친구 생일에 받은 선물이 별로일 때, 솔직하게 "별로야"라고 말할지 기분을 위해 "좋아!"라고 할지 고민한 적 있죠?
정직도 소중하고 친절도 소중한데, 이 둘이 서로 부딪쳐요.
이럴 때 "정직이 무조건 옳아" 혹은 "친절이 무조건 옳아"라고 딱 정해 주는 하늘의 계산기는 없어요.
아이작 벌린(Isaiah Berlin, 1909년부터 1997년까지)이 말한 가치 다원주의(value pluralism)가 바로 이 이야기예요.
자유, 평등, 정의, 안전처럼 진짜로 좋은 가치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은 서로 충돌하고 '통약 불가능(incommensurable)'해요.
통약 불가능이란, 길이와 무게를 같은 자로 잴 수 없듯 두 가치를 하나의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가치가 부딪칠 때 '올바른 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아요.
우리는 그때그때 하나를 택하며 다른 것을 조금 내려놓아야 해요.
벌린은 러시아 제국령 라트비아 리가에서 유대계로 태어났어요.
열 살도 되기 전 페트로그라드에서 1917년 2월 혁명을 직접 봤고, 192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옮겨 갔죠.
그는 20세기 독재정권이 '해방'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는 광경을 지켜봤어요.
'자유'라는 고귀한 말이 어떻게 폭정을 옹호하는 데 쓰이는지, 그게 벌린의 오랜 질문이었어요.
이 질문을 그는 1957년 옥스퍼드 석좌교수가 된 뒤, 1958년 취임 강연 '두 가지 자유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정면으로 다뤘어요.
세상에 좋은 것이 딱 하나뿐이라 믿는 사람은, 그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짓밟아도 된다고 여기기 쉬워요.
가치 다원주의는 바로 그 위험한 확신과 정반대편에 서 있어요.
벌린은 자유를 두 갈래로 정리했어요.
방문을 예로 들면 쉬워요.
'아무도 내 방문을 함부로 못 연다'가 소극적 자유라면, '내가 그 방에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한다'가 적극적 자유예요.
| 구분 | 소극적 자유(negative) | 적극적 자유(positive) |
|---|---|---|
| 뜻 | ~로부터의 자유 | ~를 향한 자유 |
| 핵심 | 남·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 | 스스로 자기 주인이 되는 상태 |
| 예 | 아무도 내 삶에 끼어들지 않음 | 내가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함 |
이 구분은 벌린이 무에서 만든 게 아니라, 기존 자유주의 전통을 알기 쉽게 다시 정리한 거예요.
그리고 자유는 결코 만능 열쇠가 아니에요.
벌린은 이렇게 썼어요. "Freedom for the wolves has often meant death to the sheep"(늑대에게 주어진 자유는 종종 양의 죽음을 뜻했다).
힘센 자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면 약한 자가 다친다는 뜻이죠.
그러니 자유끼리도 서로 조율해야 해요.
가장 흔한 오해부터 풀게요.
벌린이 적극적 자유 '자체'를 나쁘다고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는 두 자유 모두를 진짜 가치로 인정했어요.
그가 걱정한 건, 적극적 자유가 '진정한 자아(true self)'라는 형이상학적 전제와 붙으면서 뒤틀리는 경우였어요.
"네 진짜 자아는 사실 이걸 원해, 그러니 널 위해 강제하는 거야"라는 논리로 독재가 억압을 '해방'이라 포장할 때죠.
이런 태도는 에세이 '고슴도치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1953)에도 비쳐요.
제목은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단편 "a fox knows many things, but a hedgehog knows one big thing"(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에서 땄어요.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 체계로 밀어 넣는 고슴도치형과, 세상의 다양함에 이끌리는 여우형을 나눈 거죠.
여럿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벌린은 여우 쪽에 가까웠어요.
벌린의 가치 다원주의는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세상에는 진짜 좋은 것이 여럿 있고, 그것들은 종종 부딪치며, 하나의 잣대로 줄 세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어떤 갈등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골라 다른 것을 조금 포기해요.
이건 슬픈 결론이 아니라, '세상에 정답은 하나'라고 우기는 사람이 남을 짓밟지 않도록 지켜 주는 안전장치예요.
정직과 친절 사이에서 망설이는 그 순간이, 사실은 자유롭게 사는 사람의 평범한 하루라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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