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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디에도 없는 시점은 특정한 누구의 자리도 빌리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객관의 시선이에요. 그런데 '내가 나로 느끼는 것' 같은 의식은 반드시 어떤 자리에서만 겪을 수 있어서, 이 객관의 그림 안에 끝까지 다 담기지 않아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하늘 위 드론이 찍은 사진을 본다고 해볼게요. 사진 속에는 내가 어디서 뛰고 있는지, 공이 어디로 굴러가는지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딱 보여요. 이렇게 특정한 한 사람의 눈이 아니라 '누구의 자리도 아닌 자리'에서 세상을 보려는 태도를, 토머스 네이글은 '어디에도 없는 시점(the view from nowhere)'이라고 불렀어요. 1986년에 낸 책 제목이기도 하지요.
과학이 하는 일이 바로 이거예요. 내 기분이나 위치와 상관없이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처럼 누가 봐도 같은 사실을 찾으려 하잖아요. 이렇게 나만의 색안경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더 넓고 공평한 그림으로 나아가는 게 객관이에요. 네이글은 이 힘을 인정해요. 다만 그는 이렇게 물어요. "이 그림을 아무리 넓혀도, 끝까지 담기지 않는 게 하나 있지 않나요?"
네이글이 든 예가 그 유명한 박쥐예요. 1974년 논문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What Is It Like to Be a Bat?)」에서 그는 이렇게 말해요. 박쥐는 초음파를 쏘고 되돌아오는 소리로 세상을 '봐요'. 우리는 과학으로 박쥐의 뇌와 날개, 초음파를 아주 자세히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초음파로 세상을 느끼는 그 기분'이 박쥐에게 어떤 것인지는, 아무리 관찰해도 밖에서는 알 수가 없지요.
네이글은 의식을 이렇게 정리해요. "an organism has conscious mental states if and only if there is something that it is like to be that organism." 풀면, 어떤 생명체가 의식이 있다는 건 '바로 그 존재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있다는 뜻이에요. 나로 살아 있음에는 '나에게 이렇게 느껴짐'이라는 안쪽 면이 있어요. 이건 반드시 그 자리에 있는 당사자만 겪을 수 있어요. 그래서 네이글은 의식의 '지울 수 없는 주관성'이 마음과 몸을 이어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의 걸림돌이 된다고 봤어요. 참고로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는 원래 티머시 스프리그가 먼저 던진 것이고, 네이글이 이걸 유명하게 만든 거예요.
두 시선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또렷해져요.
| 구분 | 어디에도 없는 시점(객관) | 어딘가에 있는 시점(주관) |
|---|---|---|
| 보는 자리 | 누구의 자리도 아님 | 바로 그 존재의 자리 |
| 다루는 것 | 뇌, 초음파, 물질 | '나에게 이렇게 느껴짐' |
| 확인 방법 | 밖에서 관찰·측정 | 직접 겪어야만 |
네이글의 요점은 '둘 중 하나가 가짜'라는 게 아니에요. 두 시선 다 진짜인데, 객관의 그림을 넓힌다고 주관이 저절로 그 안에 다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정밀한 드론 사진도 '내가 공을 찰 때의 그 짜릿함'까지 찍지는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는 마음과 몸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봤어요. 동료였던 솔 크립키의 논증도 그가 심신 동일론(마음은 곧 특정 뇌 상태라는 주장)을 의심하는 데 영향을 주었어요.
첫째, '네이글은 마음과 물질이 완전히 딴 것이라는 옛날식 이원론자다'라는 오해예요. 자료는 이걸 오독이라고 분명히 해요. 그의 논점은 '세계 자체에 1인칭 시점이 박혀 있다'는 거창한 주장이 아니라, '어떤 마음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상태를 직접 겪어 봐야 한다'는 조건에 관한 이야기예요.
둘째, 2012년 책 『Mind and Cosmos』가 창조론자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를 창조론자로 보는 오해예요. 네이글은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밝혔고, 심지어 "I want atheism to be true(나는 무신론이 참이길 바란다)"라고까지 썼어요. 그는 지적설계 지지자도 아니에요. 다만 물질과 진화만으로 의식이 생겨났다는 설명이 충분한지 의심했을 뿐이지요.
어디에도 없는 시점은 특정한 누구의 자리도 빌리지 않고 세상을 보려는 객관의 시선이에요. 네이글은 이 힘을 인정하면서도, 박쥐의 예로 '그 존재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라는 주관의 안쪽 면은 밖에서 다 담기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어요. 객관과 주관은 어느 하나가 가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진짜 두 시선이에요. 다음에 '내 기분은 나만 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게 바로 네이글이 지키려던 자리라는 걸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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