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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진정성의 윤리는 '나답게 살라'는 흔한 조언을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진짜 도덕으로 봅니다. 다만 그 나다움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의미의 배경 안에서만 온전히 완성돼요.
노래방에서 남의 노래를 아무리 잘 흉내 내도, 어딘가 내 목소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반대로 조금 서툴러도 내 방식대로 부르면 '이게 나다' 싶고요.
찰스 테일러가 말한 진정성(authenticity)이 바로 이런 느낌이에요.
찰스 테일러는 1931년에 태어난 캐나다의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예요.
그는 "남 따라 살지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라"는 현대인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봤어요.
이런 태도를 그냥 '요즘 사람들 이기적이야'라고 넘기기 쉽지만, 테일러는 여기에 진짜 도덕적 가치가 숨어 있다고 봤습니다.
나답게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나에게만 있는 고유한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라는 거예요.
이 목소리를 저버리면 아무리 성공해도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남죠.
예전에는 사람의 자리가 태어날 때부터 거의 정해져 있었어요.
신분, 가문, 마을이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 줬죠.
그런데 그 틀이 헐거워지면서, 이제는 각자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테일러는 여기서 새로운 도덕이 생겼다고 봐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요구요.
마치 손글씨처럼요.
세상에 똑같은 글씨체는 없고, 남의 글씨를 억지로 따라 쓰면 어색하잖아요.
'나다운 삶'도 이와 같아서,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대로 살아 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윤리가 됩니다.
그래서 '진정성의 윤리'예요.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있어요.
'나답게'라고 하면 방문 닫고 혼자 나를 찾는 모습이 떠오르죠.
테일러는 반대라고 말해요.
나다움은 절대 혼자서 완성되지 않아요.
아기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 가는 과정을 떠올려 보세요.
부모가 이름을 불러 주고, 웃어 주고, 대답해 주는 그 주고받음 속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죠.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늘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테일러는 '인정(recognition)'을 중요하게 봐요.
누군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일이요.
반대로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사회가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면, 그건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실제로 상처를 주는 일이 돼요.
잘못된 거울에 계속 비친 사람이 자기를 못난 존재로 여기게 되듯이요.
이렇게 서로를 제대로 알아봐 주자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인정의 정치'예요.
테일러가 파고든 또 하나의 주제는 세속화예요.
옛날에는 신을 믿는 것이 공기처럼 당연했다면, 오늘날에는 믿음이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됐죠.
정해진 정답 지도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골라야 하게 됐어요.
진정성의 윤리는 바로 이 빈자리를 채우려는 마음이기도 해요.
하지만 테일러는 조심하라고 해요.
나다움이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자기만족으로 쪼그라들면, 오히려 나를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내 선택이 뜻을 가지려면, 나보다 큰 무언가와 이어져 있어야 해요.
테일러는 이를 '의미의 지평(horizons of significance)'이라고 불러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인생을 건다고 할 때, 그 일이 가족이든 정의든 아름다움이든, 나 혼자 정한 취향을 넘어 남들도 소중하다고 여기는 배경 위에 있어야 그 선택이 무게를 갖는다는 뜻이에요.
진정성의 윤리는 '나답게 살라'는 요즘의 흔한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 안의 진짜 도덕을 끄집어냅니다.
핵심은 세 가지예요.
첫째,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따르는 일은 이기심이 아니라 하나의 윤리예요.
둘째, 그 나다움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완성되며, 그래서 서로를 인정하는 문제가 중요해요.
셋째, 정답이 사라진 세속의 시대일수록 나보다 큰 의미의 배경에 나를 이어 두어야 나답게 사는 일이 얄팍해지지 않아요.
그러니 '나답게'는 문 닫고 혼자 찾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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