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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자론적 자아란 사람이 사회가 있기 전부터 이미 홀로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이에요. 테일러는 우리가 언어와 관계,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나'가 된다고 보아 이 생각을 비판했어요.
찰스 테일러는 1931년에 태어난 캐나다의 철학자예요.
사람과 사회를 함께 연구한 사회이론가이기도 하고요.
그가 오래 붙들었던 주제 하나가 바로 '원자론적 자아 비판'이에요.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를 말해요.
그러니까 '원자론적 자아'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마치 작은 알갱이처럼, 다른 누구와도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이미 완성돼 있다고 보는 생각이에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내가 누구인지가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딱 정해져 있고, 사회는 그저 그런 알갱이들이 나중에 모여 만든 것일 뿐이라는 거죠.
테일러는 이 그림이 틀렸다고 말해요.
요리를 한 번도 본 적 없이 태어난 아이를 상상해 볼게요.
이 아이가 자라서 갑자기 '나는 파스타보다 김치찌개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어요.
파스타와 김치찌개라는 말도, 그 맛도, 누군가와 함께 먹어 본 경험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뒤에야 '내 취향'이 생겨요.
테일러가 말하려는 게 이거예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는 진공 속에서 혼자 뚝딱 만들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쓰는 말, 부모와 친구, 자라 온 동네와 문화가 먼저 있어야 '나'라는 생각도 자라나요.
그래서 테일러는 말해요.
사람은 원자가 아니라, 언제나 관계와 언어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라고요.
자아는 결코 홀로 서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원자론적 자아를 믿는 쪽과 테일러의 생각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 질문 | 원자론적 자아 | 테일러의 생각 |
|---|---|---|
| 나는 언제 '나'가 되나요? | 태어날 때부터 이미 |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며 |
| 사회는 무엇인가요? | 알갱이들이 나중에 모인 것 | 나를 만든 바탕 |
| 나의 취향과 가치는? | 내 안에 원래 있던 것 | 배우고 나눈 것 |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사람은 말을 걸 상대도, 이름을 불러 줄 사람도 없어요.
우리가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누구의 친구, 어느 학교 학생,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나를 설명하는 말들은 전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요.
테일러는 이 생각을 사회 문제로도 넓혀 갔어요.
자아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면, 사람은 남에게 제대로 알려지고 존중받는 일이 아주 중요해져요.
나를 무시하거나 없는 사람 취급하면, 내 자아 자체가 상처를 입으니까요.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이야기를 '인정 정치'라고 불러요.
또 하나는 '세속화' 이야기예요.
종교가 예전만큼 삶의 중심이 아니게 된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을 의미 있다고 느끼며 사는지를 그는 살폈어요.
이때도 결론은 비슷해요.
아무리 개인이 자유로워졌다 해도, 사람은 여전히 혼자서만 살아가는 알갱이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의미 속에서 자기 삶을 채운다는 거예요.
원자론적 자아는 사람을 사회 이전에 홀로 완성된 알갱이로 보는 생각이에요.
테일러는 반대로, 우리가 언어와 관계,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나'가 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서로를 알아봐 주는 인정과, 함께 나누는 의미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었어요.
다음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르면, 그 '이런'이 어디서 왔는지 한번 되짚어 보세요.
아마 그 안에 나를 키운 수많은 목소리가 들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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