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페트라르카는 고대 로마의 문화를 '빛'으로 떠받들면서, 로마가 무너진 뒤 자기 시대까지 이어진 약 천 년을 '어둠'이라 불렀어요. 역사를 빛과 어둠, 그리고 다시 밝아질 시대로 나눈 이 시선에서 '암흑시대'라는 말이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어떤 시절을 "내 흑역사"라고 부르는 순간, 그 시기는 부끄럽고 어두운 때로 딱 정리돼 버려요.
이름이 곧 평가가 되는 거죠.
페트라르카(1304~1374)가 유럽의 천 년에 한 일이 딱 이래요.
그는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글을 되살리자고 외친 인문주의의 문을 연 사람이에요.
이 글은 그가 남긴 여러 업적 가운데 딱 하나, 바로 '암흑시대'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만 좁게 들여다볼게요.
페트라르카에게 고대 로마는 문학과 지혜가 활짝 빛나던 황금기였어요.
반대로 로마가 무너진 뒤 자기가 살던 시대까지는, 그 빛이 꺼져 버린 긴 밤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그는 '고대의 빛'과 '그 뒤의 어둠'을 나눠서 이야기했어요.
이 어둠에 붙은 이름이 훗날 '암흑시대'가 돼요.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는 옛 로마 사람들이 쓴 아름다운 라틴어와, 인간을 깊이 들여다본 글들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자기 시대의 글은 그에 비하면 거칠고 초라해 보였던 거예요.
화질 좋은 옛 명작을 본 뒤에 흐릿한 복사본을 보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는 말만 한 게 아니라 직접 빛을 캐러 다녔어요.
1345년,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 성당 도서관에서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던 키케로의 편지 모음을 찾아냈어요.
로마의 위대한 웅변가가 남긴 진짜 편지였죠.
이 발견은 흔히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출발점으로 꼽혀요.
흩어진 옛 책을 이어 붙이는 일도 했어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페트라르카는 여러 사본을 나란히 놓고 어느 게 맞는지 하나하나 대조하는 '콜라치오(collatio)' 방식으로 다시 한 권으로 엮었어요.
지금도 그 사본이 대영박물관에 남아 있어요.
낡은 퍼즐 조각을 모아 그림을 되살리듯, 고대의 '빛'을 손으로 복원한 셈이죠.
이렇게 그의 마음속엔 '고대는 빛, 그 뒤는 어둠, 지금부터 되살릴 새 시대'라는 그림이 자리 잡았어요.
인간다움(humanitas)을 한가운데 놓는 이 태도가, 신 중심으로 돌아가던 중세의 사고를 인간 중심으로 옮겨 놓았다고 평가돼요.
여기서 꼭 짚을 게 있어요.
오늘날 학자들은 '암흑시대'라는 말이 부정확하고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고 봐요.
페트라르카가 어둠이라 뭉뚱그린 그 천 년 동안에도 대학이 세워지고, 큰 성당이 지어지고, 수많은 책이 필사되고 새로운 학문이 자랐거든요.
불이 다 꺼진 밤이 결코 아니었어요.
| 무엇을 | 페트라르카의 시선 | 오늘날 학계 |
|---|---|---|
| 고대 로마 | 빛나는 황금기 | 훌륭했지만 유일한 기준은 아님 |
| 그 뒤 천 년 | 빛이 꺼진 어둠 | 학문과 문화가 자란 시대 |
| '암흑시대'란 말 | 있는 그대로의 사실 | 부정확하고 오해를 부르는 표현 |
그럼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페트라르카가 고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사이 시대를 '내가 사랑하는 빛이 없던 때'로만 봤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클수록 그 밖은 더 어둡게 보이는 법이죠.
그러니 '암흑시대'는 그 시대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 한 시인의 그리움이 만든 별명에 가까워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