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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존 솔즈베리는 800여 년 전 중세의 정치철학자예요. 그는 왕이라도 법 위에 있지 않고 법을 지켜야 하며, 법을 무시하고 제 욕심대로 다스리면 그건 왕이 아니라 폭군이라고 봤어요.

"군주는 법의 종이다." 1159년, 한 영국 학자가 쓴 책에 이런 문장이 담겨요.
왕이 가장 높은 줄로만 알던 시절에, 왕도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니 꽤 당돌한 말이지요.
이 말을 한 사람이 존 솔즈베리예요.
12세기에 살았던 학자이자 성직자였고, 나중에는 프랑스 샤르트르의 주교가 되기도 했어요.
젊을 때 파리에서 공부했고, 왕과 교회 사이를 오가며 일한 사람이라 권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봤어요.
그가 남긴 책이 바로 폴리크라티쿠스인데, 서양에서 정치를 본격적으로 따져 물은 가장 오래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어려운 말 같지만 교실 이야기로 바꾸면 쉬워요.
반장이 "떠들면 청소 당번"이라는 규칙을 정했다고 해 봐요.
그런데 정작 반장이 제일 시끄럽게 떠들면서 청소는 안 해요.
이러면 친구들이 규칙을 지킬 마음이 들까요?
존 솔즈베리가 말한 법의 지배, 라틴어로 렉스(lex)는 바로 이 지점을 찔러요.
규칙을 만든 사람도 그 규칙 아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축구 경기에서 심판조차 경기 규칙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요.
왕은 힘으로 보면 가장 높지만, 그 힘을 자기 기분이 아니라 법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써야 한다고 본 거죠.
그래서 그는 왕을 "법의 종"이라고 불렀어요.
종이라는 말이 낮춤이 아니라, 법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존 솔즈베리는 다스리는 사람을 둘로 나눠요.
한쪽은 참된 군주, 다른 한쪽은 폭군이에요.
둘은 똑같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가 완전히 달라요.
| 구분 | 참된 군주 | 폭군 |
|---|---|---|
| 따르는 것 | 법과 모두의 이익 | 자기 욕심과 기분 |
| 법을 대하는 태도 | 스스로 법을 지킴 | 법 위에 군림함 |
| 백성에게 | 섬기는 사람 | 짓누르는 사람 |
그는 나라를 사람 몸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왕은 머리, 판관은 눈과 귀, 군인은 손, 농부는 발이라는 식이지요.
머리가 발을 함부로 짓밟으면 결국 그 몸 전체가 쓰러져요.
왕이 백성을 괴롭히면 나라가 병든다는 뜻을 몸 그림으로 보여 준 거예요.

여기서 존 솔즈베리는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까지 해요.
법을 짓밟고 백성을 괴롭히는 폭군이라면, 그를 끌어내리는 일이 정당할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왕의 자리는 하늘이 준 절대 권력이라 손댈 수 없다고 믿던 시대에, 폭정에는 한계가 있다고 못 박은 셈이지요.
물론 그가 "마음에 안 들면 왕을 없애라"고 부추긴 건 아니에요.
그의 핵심은 권력에는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왕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법을 지키느냐 아니냐가 그 사람을 군주로도 폭군으로도 만든다고 본 거예요.

8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는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사실 이 생각의 오래된 뿌리 하나가 존 솔즈베리예요.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감각이지요.
반장이든 나라의 지도자든,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그 규칙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신뢰가 무너져요.
그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똑같이 유효해요.
그 사람은 법을 섬기고 있나요, 아니면 법을 밟고 서 있나요.

존 솔즈베리는 12세기에 폴리크라티쿠스를 쓴 정치철학자예요.
그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어요.
왕이라도 법 아래 있어야 하고, 법을 어기며 제 욕심대로 다스리면 그건 군주가 아니라 폭군이라는 거예요.
자리의 높이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지가 좋은 권력과 나쁜 권력을 가른다는 이 생각은, 오늘 우리가 권력을 바라보는 눈의 오래된 출발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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