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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반증 가능성이란 "이런 결과가 나오면 내 주장은 틀린 거예요"라고 미리 말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기준이에요. 틀릴 위험을 가진 주장만 과학으로 인정한 거죠.

1919년 오스트리아 빈, 열일곱 살이던 카를 포퍼는 한 가지가 궁금했어요.
같은 시기에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과학이라 부르고, 다른 여러 이론도 과학이라 불렀거든요.
그런데 포퍼가 보기에 둘은 느낌이 아주 달랐어요.
이 글에서는 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포퍼가 거기서 길어 올린 단 하나의 기준을 같이 따라가 볼게요.

어려운 말을 쓰기 전에 두 문장을 비교해 볼게요.
점쟁이가 "곧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맞는 말이 돼요.
시험에 붙어도 좋은 일, 친구를 만나도 좋은 일이니까요.
무슨 일이 생겨도 틀릴 수가 없어요.
반면 일기예보가 "내일 비가 와요"라고 하면, 다음 날 하늘만 보면 끝나요.
비가 안 오면 그 예보는 그냥 틀린 거예요.
바로 이게 핵심이에요.
일기예보는 자기가 틀릴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정해 놓아요.
포퍼는 이렇게 "이러면 내가 틀린 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을 반증 가능성이라고 불렀어요.

많은 사람은 반대로 생각해요.
절대 틀리지 않는 주장이 더 대단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포퍼의 생각은 정반대였어요.
| 주장 | 틀릴 수 있나요 | 포퍼의 판정 |
|---|---|---|
| 내일 비가 와요 | 비가 안 오면 틀림 | 과학에 가까움 |
| 곧 좋은 일이 생겨요 | 무슨 일이 생겨도 안 틀림 | 과학이 아님 |
| 빛은 태양 근처에서 휘어요 | 안 휘면 틀림 | 과학에 가까움 |
무엇이든 다 설명하는 주장은, 사실 아무것도 진짜로 말하지 않는 거예요.
위험을 무릅쓰고 "이 경우엔 내가 진다"고 선을 그은 주장만이 세상을 시험대에 올릴 수 있어요.

포퍼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을 짚었어요.
과학은 "증명"이 아니라 "버티기"라는 거예요.
"모든 백조는 하얗다"를 떠올려 볼게요.
흰 백조를 백만 마리 봐도 이 말이 완전히 증명되지는 않아요.
어딘가에 안 본 백조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검은 백조 단 한 마리만 나타나면, 그 말은 바로 무너져요.
그래서 포퍼는 과학자가 할 일은 자기 주장을 떠받칠 증거를 모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깨뜨릴 반례를 열심히 찾는 거라고 봤어요.
깨뜨리려는 시도를 계속 견뎌 낸 이론일수록 믿을 만한 이론인 거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포퍼에게 멋져 보였던 이유도 여기 있어요. "빛이 휘지 않으면 내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스스로 위험한 예측을 내걸었거든요.

여기서 자주 오해가 생겨요.
반증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그 주장은 틀렸다"는 뜻처럼 들리거든요.
전혀 아니에요.
반증 가능하다는 건 "틀릴 수도 있는 용감한 주장"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용감한 주장이 여러 검사를 통과하며 살아남으면, 우리는 잠정적으로 그걸 믿어요.
다만 포퍼는 "영원히 증명된 진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어요.
언젠가 검은 백조가 나타나면 바뀔 수 있다는 겸손을 늘 곁에 둔 거죠.

포퍼의 반증 가능성은 어렵지 않아요. "이런 결과가 나오면 내 말이 틀린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느냐, 이 한 가지예요.
뭐든 다 맞는 주장은 안전해 보여도 과학이 아니고, 틀릴 위험을 스스로 짊어진 주장이 오히려 과학에 가까워요.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절대 틀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포퍼처럼 한번 물어보세요. "그럼 어떤 경우에 그 말이 틀리게 되나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느냐가, 과학과 그저 그럴듯한 말을 가르는 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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