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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이어는 신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라고 한 게 아니라, 경험으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참인지 거짓인지 따질 수조차 없는 뜻 없는 말이라고 보았어요.

1936년, 앨프리드 줄스 에이어라는 스물여섯 살 청년이 200쪽 남짓한 얇은 책 한 권을 냈어요.
제목은 「언어, 진리, 논리」였죠.
이 책에서 그는 신에 대한 말은 참도 거짓도 아니라고 선언했고, 그 한마디로 영국 철학계가 술렁였어요.
무슨 뜻인지 배경지식 없이도 알 수 있게 천천히 풀어볼게요.

냉장고를 떠올려 봐요. "지금 냉장고에 우유가 있어"라는 말은 문을 열어 보면 바로 확인되죠.
그래서 이 말은 뜻이 있어요.
우유가 있으면 참, 비어 있으면 거짓이니까요.
에이어는 빈에 모여 있던 학자들, 흔히 빈학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생각을 영국으로 가져왔어요.
그들이 내세운 건 '검증 원리'예요.
어떤 문장이 뜻을 가지려면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거죠.
첫째, 말 자체로 참인 문장이에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같은 경우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뜻만 풀면 참이죠.
수학이나 논리가 여기에 들어가요.
둘째,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에요.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처럼 직접 보고 재 볼 수 있는 말이죠.
이 둘 중 어디에도 들지 못하면?
에이어가 보기엔 소리는 나지만 뜻은 없는 말이에요.

이제 "신이 있다"는 문장을 이 잣대에 올려 봐요.
이 말은 총각의 정의처럼 말만으로 참인 문장이 아니에요.
그럼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
망원경으로 신을 찾을 수도, 실험실에서 잴 수도 없어요.
신은 경험 너머에 있다고들 하니까요.
어떤 경험으로도 확인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거예요.
에이어에게 이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예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질 수 없는 말이에요.
비유하자면 "숫자 7은 행복하니?" 같은 질문이죠.
7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요.
질문 자체가 뜻이 없으니까요.
에이어는 신을 둘러싼 말도 이와 같다고 본 거예요.

많은 사람이 에이어를 무신론자로 오해해요.
그런데 무신론자는 "신은 없다"고 분명히 주장하죠.
그것도 신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에요.
에이어는 "있다"도 "없다"도 똑같이 뜻이 없다고 봤어요.
그러니 그는 무신론보다 한 발 옆에 서 있는 셈이에요.
| 입장 | "신이 있다"를 어떻게 보나 |
|---|---|
| 유신론 | 참이다. 신은 있다 |
| 무신론 | 거짓이다. 신은 없다 |
| 불가지론 |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
| 에이어 | 참도 거짓도 아니다. 따질 거리조차 없는 말이다 |
불가지론과도 미묘하게 달라요.
불가지론은 "답이 있긴 한데 우리가 모른다"는 쪽이고, 에이어는 "애초에 따질 답이 없는 말"이라는 쪽이거든요.

날카로운 잣대였지만, 약점도 컸어요. "뜻이 있으려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 원리 자체를 생각해 봐요.
이 원리는 총각의 정의처럼 말만으로 참인 것도 아니고,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기 기준대로라면 이 원리마저 뜻이 없는 말이 되어 버려요.
자기가 휘두른 칼에 자기가 베인 셈이죠.
에이어 자신도 훗날 이 약점을 인정했어요.
한 인터뷰에서 그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이 틀렸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을 정도예요.
그래도 그가 던진 질문, 곧 "우리가 하는 말 중 무엇이 진짜 뜻을 가지는가"는 지금도 살아 있는 물음이에요.

에이어의 핵심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신에 대한 말이 참거짓을 따질 수 있는 말인지를 물은 데 있어요.
그는 확인할 수 없는 말은 뜻이 없다고 봤고, 그래서 "신은 검증불가"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무신론과 헷갈리지 마세요.
그는 "틀렸다"가 아니라 "따질 거리가 못 된다"고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잣대가 자기 자신마저 베었다는 점까지 기억하면, 에이어를 절반 넘게 이해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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