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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후적 필연성은 직접 겪고 확인해야 알 수 있지만, 일단 참이면 어떤 세상에서도 절대 바뀌지 않는 진리를 말해요. 샛별이 개밥바라기인 것, 물이 H2O인 것처럼요.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새벽 동쪽 하늘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을 보고 '샛별'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떠오르는 밝은 별은 '개밥바라기'라고 따로 불렀죠. 뜨는 시간도 다르고 자리도 다르니, 누가 봐도 서로 다른 두 별 같았어요. 그런데 한참 뒤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둘은 같은 별, 바로 금성이었던 거예요. 짧은 이 이야기 안에 오늘 풀어 볼 크립키의 생각이 통째로 담겨 있어요.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우리가 무언가를 아는 길은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머릿속 생각만으로 아는 거예요. '1 더하기 1은 2',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 같은 건 밖에 나가 확인할 필요가 없어요. 말의 뜻만 알면 곧바로 참이니까요. 다른 하나는 직접 겪고 확인해야 아는 거예요. '오늘 비가 온다'거나 '물을 아주 잘게 쪼개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건 보고, 재고, 실험해 봐야 알 수 있죠. 철학에서는 앞쪽을 경험 이전, 곧 '선험적'이라 부르고, 뒤쪽을 경험 이후, 곧 '사후적'이라고 불러요. 말은 딱딱하지만 '생각만으로 아는 것'과 '겪어 봐야 아는 것'으로 기억하면 충분해요.

이번엔 전혀 다른 짝을 볼게요. 어떤 일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에요. 제가 오늘 파란 옷을 입었지만, 빨간 옷을 입었어도 아무 문제 없었어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던 일이죠. 반대로 어떤 일은 '아무리 다른 세상을 상상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에요. 삼각형의 변이 세 개라는 사실은 어떤 상상 속에서도 바뀔 수 없어요. 변이 네 개가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삼각형이 아니니까요. 철학에서는 앞쪽을 '우연', 뒤쪽을 '필연'이라고 불러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짝이 앞에서 본 짝과는 완전히 다른 질문이라는 점이에요. 하나는 '어떻게 아느냐'를 묻고, 다른 하나는 '바뀔 수 있느냐'를 물어요.

크립키 이전의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짝을 슬그머니 하나로 묶었어요. '겪어 봐야 아는 것은 죄다 어쩌다 그런 것'이고, '생각만으로 아는 것은 죄다 절대 안 바뀌는 것'이라고요. 꽤 그럴듯하게 들리죠? 그런데 미국의 논리학자 솔 크립키는 1970년 강연에서 이 둘은 서로 다른 질문이니 한데 묶으면 안 된다고 못 박았어요. 그러자 그동안 비어 있던 칸 하나가 드러나요. 바로 '겪어 봐야 알지만, 그래도 절대 안 바뀌는 것'이에요. 이것이 사후적 필연성이에요.
크립키는 여기서 '고정 지시어'라는 열쇠를 꺼내요. 어떤 이름은 어느 세상을 상상하든 늘 똑같은 대상을 가리킨다는 생각이에요. '금성'이라는 이름은 어떤 세상에서도 그 금성을 가리키죠. '샛별'도 '개밥바라기'도 알고 보면 모두 금성을 가리켜요. 그러니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라는 말은 사실 '금성은 금성이다'와 똑같아서, 어떤 세상에서도 거짓이 될 수 없어요. 절대 안 바뀌는 진리인 거죠.

하지만 옛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세월 하늘을 관찰해야 했어요. 생각만으로는 절대 떠오르지 않고, 겪어 봐야 알 수 있었던 거예요. 절대 안 바뀌지만 겪어 봐야 아는 진리, 이 묘한 조합이 바로 크립키가 보여 준 새로운 칸이에요. '물은 H2O다'도 똑같아요. 물이 수소와 산소로 되어 있다는 건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알아냈으니 분명 겪어 봐야 아는 일이에요. 하지만 물이 진짜 물인 이상 그 속살이 H2O가 아닌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죠. 크립키는 십 대 시절부터 가능세계라는 도구를 다듬었던 사람인데, 이 고정 지시어 생각으로 가능세계 의미론을 한층 새롭게 바꿔 놓았어요.

사후적 필연성은 두 질문을 헷갈리지 않는 데서 시작해요. '어떻게 아는가'와 '바뀔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물음이라는 것이죠. 샛별이 개밥바라기라는 사실은 직접 하늘을 봐야 알 수 있었지만, 둘이 같은 금성인 이상 어떤 세상에서도 달라지지 않아요. 크립키는 고정 지시어라는 생각 하나로, 겪어야 알면서도 영원히 참인 진리의 자리를 또렷이 보여 줬어요. 다음에 누군가 '직접 확인해야 아는 건 결국 다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면, 살짝 웃으며 금성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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