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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같은 행동을 아무리 관찰해도 어떤 말이 토끼 전체를 뜻하는지 토끼의 한 부분을 뜻하는지 끝까지 확정할 수 없다는 것, 이게 윌러드 콰인이 말한 번역의 불확정성이에요.

여러분이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어느 마을에 도착한 언어학자라고 해볼게요. 사전도 없고, 통역해 줄 사람도 없어요. 오직 마을 사람들의 말소리와 행동만 지켜보면서, 그 언어를 처음부터 옮겨 적어야 해요. 미국 철학자 윌러드 콰인은 1960년에 쓴 책 『말과 대상』에서 바로 이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어요. 그러고는 누구도 예상 못 한 결론을 꺼냈죠. 지금부터 토끼 한 마리를 따라가며 그 결론이 무엇인지 천천히 풀어 볼게요.

마침 토끼 한 마리가 풀밭을 가로질러 뛰어가요. 그 순간 마을 사람이 토끼를 가리키며 "가바가이"라고 외쳐요. 여러분은 얼른 수첩에 적겠죠. "가바가이는 토끼." 그럴듯하죠?
그런데 잠깐만요. 그 사람이 정말 '토끼'를 가리킨 걸까요? 어쩌면 '토끼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들'을 뜻했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지나가는 토끼의 모습' 하나를 가리켰을 수도 있고요. 신기한 건, 토끼가 눈앞에 있을 때는 토끼의 부분도 늘 같이 있고, 토끼의 한순간도 늘 같이 있다는 거예요. 셋이 항상 한 몸처럼 붙어 다녀요.
그래서 손가락으로 다시 가리키며 "가바가이?"라고 아무리 되물어도, 이 셋을 갈라낼 방법이 없어요. 어느 쪽이든 마을 사람은 똑같이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요. 행동만으로는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여기서 콰인의 진짜 주장이 나와요. 우리는 그 언어의 사전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 만들 수 있어요. 한 권은 "가바가이는 토끼"라고 적고, 다른 한 권은 "가바가이는 토끼의 부분들"이라고 적어요. 두 사전은 분명히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 사람들의 말과 행동 어디에도 어긋나지 않아요. 둘 다 똑같이 잘 들어맞아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똑같은 시험 답안 한 장을 두고 채점 기준표가 두 개인데, 어느 표로 매겨도 만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진짜 정답표다" 하고 하나만 고를 수 있을까요? 콰인은 그럴 근거가 없다고 봤어요. 말의 뜻은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콕 박혀 있는 보석 같은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큼만 있다는 거죠. 행동이 가려내지 못하는 차이는 그냥 정해지지 않은 채로 남아요. 이렇게 똑같이 옳은 번역이 여럿일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번역의 불확정성'이에요.

1908년에 태어나 2000년까지 산 콰인은 이런 식으로 당시 철학자들이 굳게 믿던 것들을 흔든 사람이에요. 그는 1951년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라는 짧은 글에서, '뜻만으로 참인 문장'과 '세상을 봐야 참인 문장'을 깔끔하게 둘로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을 비판했어요. 우리 지식은 문장 하나하나가 따로 검사받는 게 아니라, 그물처럼 통째로 엮여서 함께 세상과 마주한다고 봤거든요. 그물 한 칸이 걸리면 다른 칸도 같이 출렁이는 셈이죠.
또 그는 '안다는 것'을 신비한 무엇으로 두지 말고,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배우고 반응하는지를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어요. 이걸 자연화된 인식론이라고 불러요. 20세기 분석철학에서 그를 거장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은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핵심은 하나예요. 같은 행동을 아무리 지켜봐도 한 단어의 속뜻을 끝까지 못 정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가바가이'가 토끼인지 토끼의 부분인지처럼요. 뜻은 머릿속 보물상자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큼만 있다고 기억하면 돼요. 그래서 똑같이 맞는 사전이 둘일 수 있다는 것, 이 불편하지만 솔직한 결론이 콰인이 우리에게 남긴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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