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5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콰인의 존재론적 상대성은, 어떤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그 말을 옮겨 담는 '배경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느냐에도, 모두가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절대적 정답은 없다는 뜻이죠.

낯선 섬에 막 도착한 언어학자를 떠올려 보세요. 토끼 한 마리가 풀숲을 가로지르자, 옆에 있던 원주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바가이!"라고 외쳐요. 언어학자는 반갑게 수첩에 적습니다. "가바가이는 토끼." 그런데 이게 정말 맞을까요?
미국 철학자 윌러드 콰인(1908년부터 2000년까지 살았어요)은 바로 여기서 멈춰 서서 묻습니다. "가바가이"가 토끼 한 마리 전체를 뜻하는지, 아니면 '아직 몸에서 떨어지지 않은 토끼의 부분들'을 뜻하는지, 혹은 '토끼가 나타나는 한순간의 장면'을 뜻하는지, 손가락질만 봐서는 도무지 구별할 수 없다고요.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토끼가 지나갈 때마다 똑같이 "가바가이!"라고 외칠 테니까요. 아무리 여러 번 가리켜도 정답은 하나로 좁혀지지 않아요. 콰인은 이 작은 수수께끼에서 출발해, 20세기 철학을 흔든 큰 생각에 다다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볼게요. 친구가 "우리 집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 집이야"라고 말해요. 이 말은 '어디서부터' 세는지를 먼저 정해야만 뜻이 통하죠. 출발점을 한 칸 옮기면, 세 번째 집도 다른 집이 돼요. 출발점을 빼놓고는 "세 번째"라는 말 자체가 텅 비어 버려요.
콰인이 말한 존재론적 상대성도 똑같은 모양이에요. "가바가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그 말만 따로 떼어 봐서는 정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그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쓰는 '번역의 약속', 곧 배경 언어를 정해야 비로소 "아, 이건 토끼구나" 하고 말할 수 있게 돼요. 약속을 바꾸면 가리키는 대상도 따라 바뀌고요. 자가 없으면 길이를 잴 수 없듯, 배경 언어가 없으면 어떤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정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걸 콰인은 '지시의 불확정성'이라고 불렀어요.

콰인은 이 결론에 어느 날 갑자기 도달한 게 아니에요. 그는 1951년에 발표한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라는 글로 분석철학을 크게 흔들어 놓았어요. 그 무렵 철학자들은 두 가지를 거의 신앙처럼 믿고 있었어요. 하나는 '말의 뜻만으로 참인 문장'과 '경험으로 확인해야 참인 문장'을 깔끔하게 둘로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이었어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같은 문장과 "비가 온다" 같은 문장은 종류가 아주 다르다는 거죠. 또 하나는 우리의 모든 지식을 낱낱의 감각 경험으로 잘게 쪼갤 수 있다는 믿음이었고요.
콰인은 이 두 믿음이 모두 환상이라고 봤어요. 우리의 지식은 문장 한 개씩 따로따로 확인되는 게 아니라,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하나의 그물 전체로서 세상과 부딪힌다고 했죠. 그러니 어느 한 문장만 떼어 "이건 순수한 경험이고 저건 순수한 뜻"이라고 가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철학을 과학 바깥의 특별한 자리에 두지 말고, 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아는가'를 탐구하자고 했어요. 이것이 그가 내놓은 '자연화된 인식론'이에요.

콰인에게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쓰는 이론이 무엇을 전제로 깔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같았어요. 그는 이걸 유명한 한 문장으로 압축했죠. "존재한다는 것은 묶인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해요. 어떤 이론이 "무언가가 있다"고 말할 때, 그 '무언가' 자리에 실제로 들어가는 대상들, 바로 그것들이 그 이론이 인정하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있다'는 말에는 늘 보이지 않는 조건이 따라붙어요. 그냥 "있다"가 아니라 "이 언어, 이 이론 안에서 있다"인 거죠. 토끼가 진짜로 무엇인지를 절대적으로 못 박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도 우리가 고른 언어의 그물 안에서만 또렷해져요. 그물을 바꾸면 풍경도 달라지고요. 바로 이것이 존재론적 상대성이에요.

콰인의 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여요. 우리는 세상을 맨눈으로 곧장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늘 어떤 언어와 이론이라는 안경을 끼고 본다는 거예요. "가바가이"가 토끼인지 토끼의 부분인지는 우리가 고른 번역의 약속에 달려 있고,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도 우리가 쓰는 이론에 달려 있어요. 그렇다고 "그럼 아무 말이나 다 맞는 거네"라는 뜻은 아니에요. 일단 안경 하나를 끼면, 그 안에서는 답이 또렷하니까요. 다만 모든 안경을 다 벗고 본 단 하나의 절대적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게 콰인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오래 남는 생각이에요.
5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