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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삶의 형식이란 말의 뜻을 떠받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가리켜요. 말이 통하는 건 사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에요.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문장이에요. 이상하죠. 사자가 우리와 똑같은 한국어 단어를 쓴다고 쳐도 왜 못 알아들을까요? 이 글은 그 답에 숨은 '삶의 형식(Lebensform)'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 볼 거예요. 어려운 말은 하나도 안 쓰고, 우리가 매일 하는 일로만 풀어 볼게요.

'물!'이라는 한 마디를 떠올려 봐요. 목마른 사람이 외치면 '물 줘'라는 뜻이고, 바닥을 가리키며 말하면 '물 쏟았어'라는 뜻이에요. 글자는 똑같은데 뜻이 달라요.
비트겐슈타인은 이걸 보고 말했어요. 단어의 뜻은 사전에 박제된 정의가 아니라, 그 말을 실제로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요. 축구에서 공을 차는 행동이 '규칙이 있는 놀이' 안에서만 뜻을 갖듯이, 말도 사람들 사이의 놀이 안에서만 뜻을 가져요. 그는 이걸 '언어게임'이라고 불렀어요. 인사하기, 부탁하기, 농담하기가 다 서로 다른 게임이에요.

그럼 그 게임의 규칙은 어디서 올까요? 여기서 '삶의 형식'이 나와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함께 밥 먹고 약속하고 줄 서고 미안해하는 그 모든 생활 방식이 삶의 형식이에요. 말은 이 생활 위에 얹혀 있어요. 그래서 '아프다'라는 말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고 누군가 걱정해 주는 삶을 같이 살아본 사람끼리만 진짜로 통해요.
이제 사자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사자는 사냥하고 무리 짓는 사자의 삶을 살아요. 우리와 겹치는 생활이 거의 없죠. 그래서 사자가 단어를 내뱉어도 그 말이 어떤 삶에서 나왔는지 우리가 짚을 수가 없어요. 못 알아듣는 건 발음 문제가 아니라 삶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에 태어나 1951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예요.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책을 딱 한 권만 펴냈는데, 1921년에 나온 '논리철학논고'예요. 이 책에서 그는 언어가 세상을 사진처럼 그대로 그려낸다고 봤어요. 말의 뜻은 또박또박 정해져 있다는 쪽이었죠.
그런데 그는 나중에 자기 생각을 스스로 갈아엎어요. 죽은 뒤 1953년에 나온 '철학적 탐구'에서는, 말의 뜻이 사진이 아니라 쓰임과 삶에서 나온다고 말해요. 같은 사람이 언어가 어디까지 닿는지를 두 번이나 새로 그린 거예요. 첫 번째 책은 '말은 정해져 있다', 두 번째 책은 '말은 같이 사는 데서 자란다'. 삶의 형식은 바로 이 두 번째 비트겐슈타인의 한가운데에 있는 생각이에요.

삶의 형식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예요. 말이 통하는 건 단어를 외워서가 아니라 같은 생활을 나누기 때문이고요. 누군가와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낄 때,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단어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온 삶이 아직 모자란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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