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5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게임'처럼 한 이름으로 묶이는 것들은 모두가 나눠 가진 단 하나의 공통점이 없어요. 한 가족의 얼굴들처럼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닮은 점들이 사슬처럼 겹쳐 있을 뿐이라는 게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족 유사성'이에요.

여러분, 잠깐만 게임을 몇 개 떠올려 볼까요. 축구, 체스, 혼자 하는 카드 점, 술래잡기, 올림픽까지요. 그런 다음 "이 모든 게임에 빠짐없이 들어 있는 단 하나의 특징"을 찾아보세요.
승부를 가리는 것? 혼자 하는 카드 점에는 겨룰 상대가 없어요. 이기고 지는 것? 손잡고 빙글빙글 도는 강강술래에는 승자가 없죠. 재미?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게임도 있고요. 규칙? 아이가 공을 그냥 벽에 튕기며 노는 데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어요. 하나를 공통점이라 내세우면, 꼭 그것이 빠진 게임이 튀어나와요.
비트겐슈타인은 이 평범해 보이는 질문을 아주 진지하게 파고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게임이 함께 나눠 가진 본질 같은 건 없다"는 결론에 닿았죠. 대신 그는 유명한 한마디를 남겨요. "생각하지 말고, 보라." 머릿속에서 정의를 억지로 짜내지 말고, 실제 게임들을 눈으로 죽 훑어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보이는 건 공통의 핵심이 아니라, 서로 겹치고 엇갈리는 닮음의 그물이랍니다.

이 닮음의 그물을 비트겐슈타인은 '가족 유사성'이라고 불렀어요. 명절에 다 같이 찍은 가족 사진을 떠올리면 쉬워요. 첫째와 아빠는 눈매가 닮았고, 둘째와 엄마는 코 모양이 닮았고, 막내와 첫째는 웃을 때 입꼬리가 닮았어요. 그런데 "온 가족이 똑같이 가진 단 하나의 얼굴 특징"을 콕 집으려 하면 그런 건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역시 한 가족이네" 하고 알아보죠.
단어도 꼭 이렇게 작동한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봤어요. '게임'이라는 한 단어가 가리키는 것들은, 모두를 꿰뚫는 정의 하나로 묶이는 게 아니라 부분적인 닮음이 사슬처럼 이어지며 묶여요. 축구는 체스와 규칙이 있다는 점에서 닮고, 체스는 카드 점과 머리를 쓴다는 점에서 닮고, 카드 점은 또 다른 놀이와 닮지만, 양 끝에 있는 두 게임은 서로 거의 안 닮았을 수도 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이걸 한 가닥씩 겹쳐 꼬아 만든 실에 비유했어요. 실이 튼튼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단 하나의 긴 섬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짧은 섬유들이 서로 겹쳐 잡아 주기 때문에 길고 질겨지는 거죠. 말의 의미도 그렇게 짜여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갈게요. 정의를 못 내리면 그 말을 제대로 못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정반대로 봤어요.
'게임', '의자', '예술', '사랑' 같은 말을 한 줄로 깔끔하게 정의해 보라고 하면 누구나 말문이 막혀요. 하지만 그 말들을 못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우리는 경계가 흐릿한 채로도 매일 멀쩡히,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이 단어들을 주고받아요. 또렷한 정의는 말이 작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었던 거예요.
오히려 모든 것에 깔끔한 본질이 숨어 있어야 한다는 믿음, 그게 철학자들을 오래 헤매게 만든 함정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봤어요. 흐릿한 경계는 결함이 아니에요. 안개가 살짝 낀 길이라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요.

더 흥미로운 건, 비트겐슈타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뒤집었다는 점이에요. 1889년에 태어난 그는 1921년에 펴낸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또렷하게 비추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어요. 언어 밑에 단단한 논리의 뼈대가 깔려 있다고 본 거죠.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그가 1951년에 세상을 떠나고 1953년에 나온 '철학적 탐구'에서는 정반대로 갔어요.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정밀한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며 쓰는 도구이자 놀이라는 거예요. 단어의 뜻은 사전 속 정의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쓰임' 속에 있다고 했죠. 가족 유사성은 바로 이 후기 사상의 핵심 열쇠랍니다.
같은 철학자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언어와 사고의 한계선을 새로 그은 셈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철학을 두 차례나 뒤흔든 사람이라고 불러요.

가족 유사성은 이름은 어렵지만 핵심은 하나예요. 세상의 많은 말들은 모두가 나눠 가진 단 하나의 본질로 묶이는 게 아니라, 가족 얼굴처럼 부분적으로 닮은 점들이 사슬처럼 겹쳐서 묶인다는 것. 그러니 '게임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같은 물음에 한 줄짜리 깔끔한 답이 안 나와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정의를 머리로 짜내기 전에 먼저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흐릿한 경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게 비트겐슈타인이 알려 준 우리 언어의 진짜 모습이니까요.
5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