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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 가면 매일 아침 똑같이 인사를 해요. 안녕하세요, 똑같은 말에 똑같은 고갯짓. 가끔은 좀 지겹기도 하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친구도 선생님도 그냥 휙 지나가요. 뭔가 허전하고,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예요.
이렇게 정해진 순서대로 여러 사람이 똑같이 되풀이하는 행동을 의례라고 불러요. 영어로는 리추얼이라고 하고요. 명절에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일, 졸업식에서 다 같이 교가를 부르는 일, 생일에 촛불을 끄고 박수를 치는 일이 모두 의례예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반복이 사람과 사람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 줘요.

한병철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스물 몇 살 무렵 독일로 건너간 철학자예요. 한국 이름 그대로 독일에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쳐요.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100쪽 안팎으로 얇은데도, 세계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많은 사람이 읽었어요.
그는 주로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지치고 외로운가를 파고들어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하며 성과를 내려다 결국 지쳐 버린다고 했고, 투명사회라는 책에서는 모든 걸 다 보여 주고 다 드러내는 세상이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고 했어요. 그리고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지금 우리 곁에서 의례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고 말해요.

대나무를 떠올려 보세요. 대나무가 그렇게 길고 곧게 설 수 있는 건 중간중간 단단한 마디가 있기 때문이에요. 마디가 없으면 그냥 흐물흐물 쓰러지고 말죠.
한병철은 의례가 우리 시간에 바로 이 마디를 만들어 준다고 봐요. 그냥 흘러가기만 하면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 보이는 나날에, 명절과 생일과 졸업식 같은 의례가 여기서 한 단락이 끝났어 하고 표시를 해 주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그저 아무 날들의 더미가 아니라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요. 봄에는 이걸 하고 겨울에는 저걸 한다는 리듬이 한 해에 생기고요.
그리고 의례는 마음속 진심보다 정해진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겨요. 인사할 때 속으로 그리 반갑지 않아도 일단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잖아요. 그 형식 덕분에 우리는 기분이 어떻든 서로를 대하는 법을 알고, 어색하지 않게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의례는 진심을 억지로 짜내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같은 동작을 함께 하기만 하면 돼요.

처음 가 본 친구 집은 어쩐지 낯설고 불편하죠. 그런데 몇 번 드나들며 늘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컵에 물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내 집처럼 마음이 놓여요. 한병철은 의례도 이런 일을 한다고 봐요.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사이, 낯설고 막막하던 세상이 조금씩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의례에는 정해진 자리와 정해진 물건이 따라와요. 명절의 송편, 생일의 케이크, 졸업식의 꽃다발처럼요. 매번 같은 것이 같은 자리에 있으니,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올지 알고 마음을 놓아요.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면 늘 불안하겠지만, 의례는 적어도 한 해의 큰 마디들을 미리 알려 주거든요. 이 잔잔한 안정감이 사실은 의례가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에요.

요즘 우리는 진짜 내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쳐요. 형식적인 인사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한마디가 멋지다고 여기죠. 좋은 마음이지만, 한병철은 여기에 작은 함정이 있다고 봐요. 모두가 자기 속마음과 개성만 앞세우면, 다 같이 똑같이 반복하는 형식은 낡고 가짜처럼 보이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은 의례를 시시하게 여기고 하나둘 그만둬요.
게다가 지금은 무엇이든 빨리 만들고 빨리 쓰고 버리며, 하루 종일 끝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세상이에요. 의례는 정반대예요. 천천히, 똑같이, 여러 번 되풀이하니까요. 빠르게 새것만 좇는 흐름 속에서 느리고 반복적인 의례는 자꾸 뒤로 밀려나요. 해마다 명절 풍경이 조금씩 단출해지고, 안부 인사가 짧은 메시지 한 줄로 바뀌는 걸 떠올리면 쉽게 와닿을 거예요.

의례의 가장 큰 힘은 나를 잠깐 내려놓고 우리가 되게 하는 데 있어요. 졸업식에서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내 기분이나 내 사정보다 함께라는 느낌이 더 커지잖아요. 의례는 이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같은 자리에 불러 모아요.
그래서 의례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모일 핑계를 잃어요. 각자 자기 손안의 화면만 들여다보고, 시간은 마디 없이 밋밋하게 흘러가요. 한병철은 이렇게 되면 우리가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도 사실은 더 외로워진다고 말해요. 누구의 눈치도 안 보는 대신, 함께 딛고 설 단단한 마디가 사라졌으니까요.
다만 그가 무조건 옛날로 돌아가자고 한 건 아니에요. 그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 한 번쯤 멈춰서 들여다보자고 권하는 쪽에 가까워요.

의례는 명절이나 졸업식처럼 여러 사람이 정해진 형식대로 반복하는 행동이고, 흘러가는 시간에 마디를 만들어 흩어진 사람들을 우리로 묶고 낯선 세상을 집처럼 편안하게 만들어 줘요. 한병철은 진심과 개성, 속도와 새것만 좇는 오늘날 이 의례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고 봤어요. 다음에 똑같은 인사나 해마다 같은 행사가 지겹게 느껴질 때, 그 반복이 사실은 우리를 덜 외롭게 붙들어 주던 마디였는지 한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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