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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전쟁을 2년 앞당겨 끝낸 사람이 있어요.
그의 무기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기계 한 대였어요.
앨런 튜링은 1939년, 영국 정부가 극비로 운영하던 암호 해독 기지 블레칠리 파크에 배치됐어요.
그의 임무는 독일군이 매일 주고받는 군사 통신을 해독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암호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했다는 거예요.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를 썼어요.
쉽게 말하면, 매일 자정에 비밀번호가 바뀌는 자물쇠인데 그 비밀번호 조합이 159경 개였어요.
1 다음에 0을 17개 붙인 숫자예요. 슈퍼컴퓨터 없이는 평생 걸려도 못 뚫어요.
그런데 해를 넘기기 전에 반드시 풀어야 했어요.
다음 날 자정이 되면 암호가 또 바뀌니까, 24시간 안에 못 풀면 그날 수천 명이 더 죽을 수도 있었거든요.
튜링은 이 문제를 사람 손으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는 기계를 만들었어요.
봄브(Bombe)라고 불린 이 장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속도로 조합을 돌리며 암호의 패턴을 찾아냈어요.
역사가들은 이 기계 덕분에 연합군이 전쟁을 최소 2년 앞당겨 끝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1,400만 명의 목숨이 살아남았다고 추산해요.
전쟁터에 단 한 발도 나가지 않은 수학자가 연합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군사적 기여를 한 거예요.
1936년, 스물네 살 청년이 종이 위에 기계 한 대를 발명했어요.
그 기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 당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요.
튜링이 케임브리지 대학원생이던 시절, 그는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어요.
내용인즉슨, 무한한 테이프 위에 기호를 읽고 쓰며 미리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계산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상의 장치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걸 튜링 머신이라고 불러요.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이걸 실제로 만들 수 없었다는 점이에요.
논문에서 말한 "무한한 테이프"는 말 그대로 상상 속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상상이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작동 원리가 됐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스마트폰, 그 안에서 돌아가는 모든 앱은 90년 전 한 청년이 종이 위에 끄적인 상상의 기계와 정확히 같은 원리로 움직이고 있어요.
전쟁 후 튜링은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에서 ACE라는 실제 컴퓨터를 설계하기도 했어요.
종이 위의 상상이 현실의 기계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20년도 안 됐어요.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 이 질문을 던진 수학자를 사람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7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매일 기계와 대화하고 있어요.
튜링은 1950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 질문을 검증할 방법을 제안했어요.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불렀는데, 원리는 간단해요.
커튼 뒤에 숨은 상대와 문자로만 대화했을 때 그게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봐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걸 튜링 테스트라고 불러요.
채팅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헷갈려본 적이 있다면, 그 혼란을 정확히 예측한 사람이 튜링이에요.
당시 동료 학자들은 이 질문 자체를 황당하게 여겼지만, ChatGPT 같은 AI가 등장한 지금 이 테스트는 전 세계가 벌이는 논쟁의 출발점이 됐어요.
"우리가 오직 답을 낼 수 있는 기계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질문을 회피하는 거야."
튜링이 당시 남긴 말이에요.
그는 70년 앞을 보고 있었어요.
전쟁이 끝난 뒤, 나라가 그에게 건넨 것은 훈장이 아니었어요.
선택지 두 개였어요. 감옥에 가거나, 약물로 몸이 변하는 것을 감수하거나.
1952년, 앨런 튜링은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어요.
영국에는 당시 1885년에 만들어진 법이 아직 살아 있었고, 그 법은 남성 간의 관계를 "중대한 외설 행위"로 규정해 처벌했어요.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면서 감옥형 아니면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어요.
화학적 거세란, 여성 호르몬인 DES를 강제로 투여해 성욕을 억제하는 치료예요.
튜링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서 후자를 택했어요.
그 결과 체중이 늘고, 유방이 발달하는 등 몸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더 아이러니한 건 이거예요.
블레칠리 파크에서의 공적은 당시 최고 기밀이었어요.
그래서 재판장에서 "저는 전쟁에서 수백만 명을 살렸습니다"라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조차 없었어요.
1954년 6월 7일, 튜링은 자신의 방에서 발견됐어요.
옆에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있었어요.
사과에는 시안화칼륨이 묻어 있었어요. 향년 41세.
영국 정부가 공식으로 사과한 건 2009년이었어요.
사면장이 나온 건 2013년이었어요.
나라를 구하고 55년 만에 받은 사과예요.
수백만 명을 살린 사람은 41세에 죽었고,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이 된 건 그가 죽은 뒤였어요.
지금 당신이 쓰는 스마트폰은 그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묻고 싶어요. 우리가 구하지 못한 사람 중에, 아직 구해야 할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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