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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은 한 줄에 평균 두 단어밖에 적혀 있지 않아요.
바다라야나가 쓴 브라흐마 수트라는 555개의 짧은 수트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수트라란 '실'이라는 뜻으로, 지혜를 최대한 짧게 꿰어놓은 잠언이에요.
"아타토 브라흐마 지기야사." 첫 번째 수트라 전문이에요.
번역하면 "이제, 브라흐만을 탐구해야 한다"예요.
원문 산스크리트어로는 단 네 단어예요.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수천 년에 걸쳐 쌓인 고대 인도의 종교 성전 묶음이에요.
분량이 현대 백과사전 몇 권을 가뿐히 넘어요.
바다라야나는 그 방대한 내용 전체의 결론을 555개 잠언 안에 밀어넣었어요.
박사논문 1000쪽을 트위터 글 555개, 한 트윗에 평균 두 단어로 압축해 놓은 거예요.
그런데 그 책이 1500년간 인도 철학의 중심에 있었어요.
인도 철학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저자가 정작 본인 나라에서도 정체불명이에요.
바다라야나가 살았던 시기를 학자들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200년 사이로 봐요.
추정 폭이 무려 700년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이 책 저자가 고려 초기 사람이거나 일제강점기 사람이에요"라는 말과 같아요.
인도 전통에서는 그를 비야사와 동일 인물로 봐요.
비야사는 마하바라타, 고대 인도의 거대 서사시를 쓴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작가예요.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두 사람이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본명이 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베단타 학파 전체의 시조로 불려요.
베단타는 '베다의 끝'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삼는 인도 정통 철학 학파예요.
21세기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인데 저자가 실존 인물인지조차 합의가 안 된 상황과 비슷해요.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 정체불명의 인물이 쓴 책을 두고 인도 최고의 철학자들이 1500년 동안 싸웠다는 거예요.
신과 인간이 같다는 학파, 다르다는 학파, 둘이면서 하나라는 학파가 모두 같은 책을 들고 싸웠어요.
8세기 철학자 샹카라는 브라흐마 수트라에 주석을 달며 불이일원론을 주장했어요.
불이일원론이란 "신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상이에요.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깨달음을 통해 신과 내가 원래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11세기에 라마누자가 똑같은 브라흐마 수트라를 읽고 한정불이론을 내놨어요.
한정불이론은 "신과 인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주장이에요.
신은 전체이고 인간은 그 안의 일부, 바다와 파도 같은 관계예요.
13세기 마드바는 또 달랐어요.
같은 555문장을 보고 이원론, "신과 인간은 영원히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결론을 냈어요.
세 사람이 같은 책의 같은 문장을 읽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세 가지 철학을 만든 거예요.
마치 헌법 조항 한 줄을 두고 진보·중도·보수 법관이 정반대 판결을 내리면서 모두 "이게 헌법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싸움이 1500년 동안 계속됐어요.
그는 자기 책을 끝내지 않은 채 떠났고, 그 빈자리를 1500년간 다른 사람들이 채웠어요.
바다라야나는 자신이 어떤 학설을 지지하는지 본문에 명시하지 않았어요.
수트라가 워낙 짧다 보니 "그것은 그렇지 않다"는 한 줄을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빈틈이 샹카라에게는 불이일원론의 자리였고, 마드바에게는 이원론의 자리였어요.
비유하자면 작곡가가 멜로디 윤곽만 남기고 떠난 거예요.
연주자마다 다른 곡이 됐는데, 그 곡이 1500년간 한 나라의 철학적 중심에 있었어요.
결국 브라흐마 수트라는 저자의 책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책이 됐어요.
샹카라의 브라흐마 수트라, 라마누자의 브라흐마 수트라, 마드바의 브라흐마 수트라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거예요.
바다라야나가 자기 생각을 의도적으로 숨겼는지, 처음부터 독자가 채우도록 설계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질문은 남아 있어요.
과연 555개 잠언 뒤에는 한 사람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빈자리였던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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