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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플로티노스는 자기 얼굴이 이미 가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은, 두 번 가짜가 되는 일이었죠.
어느 날, 제자 아멜리우스가 화가 카르테리우스를 몰래 강의실에 데려왔어요.
스승의 얼굴을 기억에 남기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플로티노스는 그 사실을 알고 격노했어요.
"자연이 이미 나에게 입혀준 그림자를 들고 다니는 것도 부끄러운데, 그 그림자의 그림자를 또 남기라고?"
여기서 그림자는 육체를 뜻해요.
플로티노스에게 몸은 이미 진짜 자신의 가짜 사본이었거든요.
그러니 초상화는 가짜의 가짜, 즉 두 번 가짜였던 거예요.
이 생각의 뿌리가 바로 그가 평생 가르친 일자(One)로의 회귀예요.
일자란 우주 모든 존재의 근원, 가장 순수한 원점 같은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SNS 프로필도, 거울 속 얼굴도 진짜 내가 아니야. 그 모든 게 벗겨진 뒤에 남는 그게 나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셀카를 찍는 건 그에게 철학적 자해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플로티노스는 인도 철학을 배우겠다며 황제의 군대에 자원입대했어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뒤 로마에 왔는데, 동방 철학에 대한 갈증이 아직 남아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243년 무렵, 39세의 플로티노스는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군에 자원했어요.
"그 부대 주둔지에 유명한 도서관이 있다더라"는 말 하나로 군대에 입대한 사람을 상상해 보면 돼요.
전투가 목적이 아니라 페르시아·인도의 철학자들을 직접 만나는 게 목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원정은 재앙으로 끝났어요.
황제가 원정 중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한 거예요.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플로티노스는 안티오키아로 간신히 탈출했어요.
안티오키아는 오늘날 터키와 시리아 국경 근처에 있던 고대 도시예요.
결국 동방 철학을 직접 배우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 실패 이후 로마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자기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플로티노스의 책이라 부르는 〈엔네아데스〉는 사실 그가 짠 목차가 아니에요.
로마에 정착한 플로티노스는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말로 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고, 죽기 전 17년 동안 총 54편의 논문을 남겼어요.
이 글들이 모여 〈엔네아데스〉가 됐죠.
엔네아데스는 "아홉 개씩 묶음"이라는 뜻인데, 54편을 6묶음으로 나누고 각 묶음에 9편씩 담은 구조예요.
그런데 이 구조를 설계한 건 플로티노스가 아니에요.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스승이 죽은 뒤 마음대로 재배열한 거예요.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의 강의를 곁에서 정리한 시리아 출신 학자예요.
그는 논문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어떤 걸 앞에 놓을지 혼자 결정했어요.
결국 후대가 "플로티노스의 대표작"이라 부르는 책의 목차는, 정작 그 본인이 짠 적 없는 편집자의 작품인 거예요.
평생 강의만 하던 교수가 정년퇴직 후 처음 책을 냈는데, 출판사가 챕터 순서를 마음대로 다시 짜서 베스트셀러가 된 셈이에요.

현실 너머만 가르치던 철학자가, 정작 현실의 황제를 움직여 도시 하나를 통째로 세우려 했어요.
만년의 플로티노스는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와 황후 살로니나를 설득했어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의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해서 플라토노폴리스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어요.
플라토노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플라톤의 도시예요.
플라톤이 〈법률〉에서 설계한 이상국가 구조를 그대로 가져다 운영하겠다는 거였어요.
〈법률〉은 "이상적인 사회는 이렇게 돌아가야 한다"를 구체적으로 설계한 플라톤의 정치 철학서예요.
명상 전문 유튜버가 재벌 회장을 설득해 "승려들이 운영하는 도시"를 진짜로 세우겠다고 나선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그것도 황제를 직접 끌어들여서요.
하지만 황궁 신하들의 반대로 계획은 무산됐어요.
이유가 공식 기록으로 남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플라토노폴리스는 끝내 지도 위에 그려지지 못했어요.
초상화는 거부했지만 도시는 원했던 사람, 몸은 버리려 했지만 세상은 바꾸려 했던 사람.
그 모순이 어쩌면, 플로티노스가 인간이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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