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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콰인은 어떤 외국어 사전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어요.
그 증거로 토끼 한 마리를 들었어요.
이야기는 이래요.
한 언어학자가 처음 보는 부족 마을에 들어갔어요.
그때 토끼 한 마리가 풀밭을 가로질러 뛰어갔고, 원주민이 손을 뻗으며 외쳤어요. "가바가이!(Gavagai)"
언어학자는 수첩에 적었어요. "가바가이 = 토끼."
그런데 콰인은 물었어요. "그게 정말 토끼인지 어떻게 알아?"
'가바가이'는 토끼가 아니라 '토끼가 지나가는 사건'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토끼 귀가 저기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토끼라는 시간의 한 단계'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어요.
원주민에게 "이게 토끼야?"라고 물어볼 수도 없어요. 그 질문 자체를 하려면 이미 그 언어를 알아야 하거든요.
이게 번역의 불확정성이에요.
어떤 언어에도 정답 번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번역이란 결국 번역하는 사람이 선택한 해석일 뿐이에요.
친구가 "괜찮아"라고 말했을 때, 정말 괜찮은 건지 억지로 참는 건지 끝까지 알 수 없잖아요.
콰인이 말한 건, 그 답답함이 언어 전체에 적용된다는 거예요.
평생을 논리와 언어에 바친 철학자가 내린 결론이 "완벽한 번역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였으니, 이건 그냥 비관이 아니에요. 증명이에요.

콰인은 자기를 철학자로 만들어준 학파를 자기 손으로 매장했어요.
그것도 단 26쪽짜리 논문 하나로요.
1951년, 콰인은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Two Dogmas of Empiricism)"라는 논문을 발표해요.
경험주의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경험에서 온다"는 철학 입장이에요.
그리고 당시 영미 철학계를 지배하던 논리실증주의는 그 경험주의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이었어요.
논리실증주의란 이런 거예요.
"언어와 논리만 제대로 쓰면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
오늘날로 치면, 철학을 수학처럼 엄밀하게 만들려는 프로젝트였어요.
콰인의 논문은 그 건물의 기둥 두 개를 동시에 뽑아버렸어요.
분석 명제와 종합 명제의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의미의 검증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증명한 거예요.
쉽게 말하면, "너희가 철학을 수학처럼 만들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어"라는 선언이었어요.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건 따로 있어요.
콰인이 무너뜨린 학파의 수장, 루돌프 카르납은 콰인이 가장 존경한 스승이었거든요.
콰인은 1930년대에 카르납이 이끄는 빈학파 모임에 직접 참석한 거의 유일한 미국인 학자였어요.
빈학파란 1920~3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인 철학자와 과학자 그룹이에요.
논리와 과학으로 철학을 혁신하자는 운동이었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적 모임이었어요.
그 모임에 초대받은 외국인이, 훗날 논문 한 편으로 그 모임 전체를 끝낸 거예요.
평생 자기를 키워준 사수에게 "당신이 일하던 방식은 처음부터 틀렸습니다"라는 공식 보고서를 올리는 상황과 같아요.
콰인은 그걸 했어요.
그리고 카르납은 그것을 읽었어요.

대서양 한복판에서 연합군 함선이 격침되는 동안, 콰인은 워싱턴의 어두운 방에서 독일어 전문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콰인은 학교를 떠나 미 해군 소령으로 자원입대해요.
배치된 곳은 워싱턴 D.C.의 통신정보부(OP-20-G).
그곳에서 약 3년 동안 독일 U보트의 암호 통신을 해독하는 일을 맡았어요.
U보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잠수함이에요.
연합군 보급선을 대서양에서 닥치는 대로 격침시키며 전쟁의 향방을 좌우했어요.
그 U보트가 어디 있고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아내는 것, 그게 수천 명의 목숨과 직결된 일이었어요.
책상 앞에서 기호와 논리만 다루던 철학자가, 실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작전실에 앉아 있는 거예요.
가장 추상적인 학문을 하던 사람이 가장 구체적인 임무 앞에 놓인 거예요.
그 3년이 콰인에게, 언어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는 감각을 뼛속 깊이 새겼을 거예요.

콰인의 타자기에는 평생 물음표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가 남긴 진술들은 한 세대의 철학자 전체를 의문에 빠뜨렸어요.
콰인은 평생 사용한 휴대용 타자기에서 물음표 키를 의도적으로 떼어냈어요.
그 자리에 수학 기호를 넣었어요.
26권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을 그 타자기로 썼어요.
키보드에서 ? 키를 뽑아버린 사람을 상상해보세요.
"나는 의심하지 않아. 나는 진술할 뿐이야."
그게 콰인이 자기 글쓰기 방식으로 선언한 태도예요.
하지만 아이러니가 있어요.
물음표 없이 쓴 그의 진술들, 번역은 불확정하다, 분석과 종합의 구별은 없다, 지식은 총체적으로만 검증된다.
이 진술들이 이후 철학자들에게 남긴 건 답이 아니라 평생 씨름할 질문들이었어요.
물음표를 뺀 사람이 가장 많은 물음표를 남긴 거예요.
콰인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철학자들은 그가 내린 진술의 의미를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이에요.
그가 타자기에서 뺀 물음표는 어디로 갔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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