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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븐 루시드는 낮에는 판사석에 앉았고, 밤에는 칼리프의 맥을 짚었으며, 새벽에는 600년 전 죽은 그리스인의 책을 한 줄씩 풀어 썼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법관이면서 대학병원 원장이면서 철학과 교수를 동시에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세 가지를 대충 한 게 아니라, 셋 다 당대 최고 수준으로 해냈어요.
이븐 루시드는 1126년 지금의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서 태어났어요.
아랍어 이름은 이븐 루시드지만, 유럽 라틴어권에서는 아베로에스라 불린 인물이에요.
집안은 대대로 법관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었어요.
할아버지도 코르도바 대카디(이슬람 세계의 대법원장)였고, 아버지도 판사였어요.
이븐 루시드도 1169년 세비야의 카디로 임명됐어요.
카디는 이슬람 법학을 바탕으로 재판을 여는 판사예요.
1182년에는 코르도바 대카디 자리까지 올라섰어요.
동시에 알모하드 왕조 칼리프의 주치의로도 일했어요.
알모하드 왕조는 당시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던 이슬람 왕조이고, 칼리프는 그 왕조의 최고 통치자예요.
그 모든 걸 하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전 저작에 주석을 달고 있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이븐 루시드 시대 기준으로 600년 전에 죽은 이방인이에요.
이슬람 최고 판사이자 왕의 주치의가, 그 이방인의 책을 새벽마다 한 줄씩 풀어 쓰고 있었던 거예요.
이븐 루시드의 가장 유명한 책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향한 반박문이었어요.
100년 전에 나온 베스트셀러에 챕터마다 댓글을 달아 책 한 권으로 묶은 셈이에요.
상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어요.
알 가잘리는 11세기 이슬람 세계에서 "증거의 권위"라 불리던 신학자예요.
그는 1095년경 『철학자들의 모순』을 써서 이렇게 선언했어요.
"철학은 신앙의 적이다. 그리스식 논리로 신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신앙을 흔든다."
그 책은 이슬람 세계에서 80년 가까이 정설처럼 굳어 있었어요.
하지만 이븐 루시드는 1180년경 『모순의 모순』을 써서 가잘리의 논거를 항목별로 하나하나 반박했어요.
가잘리가 "이래서 철학은 틀렸다"고 한 지점마다, 이븐 루시드는 "아니, 그 추론이 틀렸어요"라고 되받아쳤어요.
가잘리는 이 책이 나왔을 때 이미 70년 넘게 묘 속에 있었어요.
이븐 루시드는 죽은 사람의 논증 하나하나에 전면전을 선포한 거예요.
결국 이 논쟁은 유럽까지 건너가,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이 "철학과 신앙은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어요.
1195년 코르도바 광장에서 이븐 루시드는 자기가 평생 쓴 책들이 한 무더기로 타들어가는 걸 직접 지켜봤어요.
단죄를 내린 건 알모하드 왕조의 새 칼리프 야쿠브 알 만수르였어요.
이 왕조는 이븐 루시드가 평생 충성을 바쳐온 바로 그 왕조예요.
마치 평생 한 회사에 충성한 임원이, 창업자 손자가 취임하자마자 자신을 배임범으로 몰고 전 저작 폐기를 명령한 상황이에요.
그것도 자신이 오랫동안 최고 판사로 일하던 광장 바로 앞에서요.
카디(판사)였던 그가, 카디 앞에서 이단 판결을 받았어요.
그는 코르도바 인근 루세나로 추방당했어요.
루세나는 당시 안달루시아의 유대인 공동체 마을이었어요.
철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금지됐고, 그의 철학 저작들은 공개적으로 불태워졌어요.
알 만수르는 얼마 후 사면을 내리려 했어요.
하지만 이븐 루시드는 사면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1198년 마라케시(지금의 모로코)에서 숨을 거뒀어요.
시신만이 고향 코르도바로 돌아왔어요.
이븐 루시드의 책 상당수는 오늘날 아랍어 원본이 아니라 라틴어와 히브리어 번역본으로만 남아 있어요.
한국에서 절판된 책이 미국 대학 필독서가 되어 영어 번역본으로만 남은 상황과 같아요.
자기 문명이 광장에서 불태운 책이, 다른 문명에서 대학 교재가 된 거예요.
그걸 가능하게 한 곳이 13세기 스페인의 톨레도 번역학교예요.
이곳은 아랍어, 라틴어, 히브리어 번역가들이 모여 아랍 세계의 학문을 유럽 언어로 옮기던 기관이에요.
그리스 철학이 아랍어로 보존됐다가,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들어오는 경로였어요.
이 과정에서 이븐 루시드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이 유럽 학자들의 손에 들어갔어요.
중세 유럽 학자들은 그를 그냥 "The Commentator(주석가)"라고만 불렀어요.
주석가라고 하면 고유명사 없이도 누구나 그를 떠올릴 만큼, 유럽 학문의 중심에 있었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 중세 유럽 최고 신학자예요.
그가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통합하는 작업에서 이븐 루시드의 주석을 적극 인용했어요.
단테는 『신곡』에서 이븐 루시드를 림보에 배치했는데, 림보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으로 세례를 받지 않아 천국엔 못 들어가지만, 지혜로워서 지옥에도 안 보낸다는 뜻이에요.
자기 문명이 이단으로 선고한 사람에게, 다른 문명이 '천국 바로 아래'를 내준 거예요.
이슬람권이 그를 잊으려 한 사이, 유럽은 그를 교재로 삼고 있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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