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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 손에 들린 휴대폰의 설계도는 1936년, 케임브리지의 23살 대학원생이 종이 위에 그렸어요.
진짜 기계를 만든 게 아니에요.
수학 논문 한 편에 "이런 기계가 있다고 치면"이라고 상상했을 뿐이에요.
앨런 튜링은 1936년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튜링 머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어요.
아주 단순한 장치예요.
긴 종이테이프에 0과 1을 읽고 쓰는 기계 하나, 그게 전부예요.
그런데 이 상상 속 기계가 오늘날 모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가 됐어요.
컴퓨터가 '계산하는 기계'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 정의 자체를 처음 내린 사람이 튜링이에요.
90년이 지난 지금, 인류 전체가 23살 청년의 종이 메모 위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수학자들은 당시 이 논문을 읽고 "기계가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어요.
그 질문이 결국 컴퓨터 과학이라는 학문 전체의 출발점이 됐어요.
튜링은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실은 그가 죽고 20년이 지난 뒤에야 공개됐어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기계로 모든 작전 명령을 주고받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매일 비밀번호가 바뀌는 자물쇠를 수만 개씩 동시에 풀어야 하는 셈이에요.
사람 손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어요.
튜링은 런던 외곽의 비밀 암호해독 시설 블레츨리 파크에서 봄베(Bombe)라는 기계를 설계했어요.
봄베는 에니그마의 내부 설정을 역으로 추적해 독일군 전보를 해독하는 장치예요.
이 기계 덕분에 매일 수만 통의 독일군 통신이 영국군에게 실시간으로 읽혔어요.
역사학자들은 이 암호해독 덕분에 전쟁이 2~4년 단축되고 약 1400만 명의 목숨이 구해졌다고 추정해요.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 사실을 1970년대까지 50년 가까이 기밀로 묻었어요.
회사를 살린 핵심 직원이 비밀유지서약 때문에 평생 "저는 그냥 사무직이었어요"라고만 말해야 하는 것과 같아요.
튜링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영웅 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튜링은 피해자로 경찰서에 들어갔다가, 피의자로 나왔어요.
1952년, 맨체스터 자택에 도둑이 들었어요.
튜링은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그가 동성 연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당시 영국 법은 동성애를 '중대한 외설(gross indecency)'로 규정하고 처벌했어요.
오늘날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50년대 영국에서는 엄연히 형사 범죄였어요.
재판에서 그는 감옥과 호르몬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튜링은 호르몬 치료를 선택했어요.
1년간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자 가슴이 부풀고 만성적인 무기력함이 찾아왔어요.
암호해독 공로로 유지해왔던 보안 허가도 즉시 박탈됐어요.
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 신고했는데, 정작 본인이 처벌받은 거예요.
영국을 구한 사람이 영국 법정에서 자신이 가진 몸을 벌받은 셈이에요.
1954년 6월 8일 아침, 그의 침대 옆 탁자 위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놓여 있었어요.
가정부가 발견했을 때 튜링은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41세였어요.
검시 결과는 청산가리 중독이었어요.
튜링은 어린 시절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가장 좋아했다고 해요.
마녀가 사과에 독을 묻히는 장면을 특히 즐겨 흥얼거렸다고 전해져요.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어린 시절 사랑한 그 동화의 이미지로 마무리한 거예요.
결국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에게 사후 사면을 내렸어요.
2017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튜링 법'이 제정되어 동성애로 처벌받은 수만 명이 함께 사면됐어요.
세상이 60년이 지나서야 잘못을 인정했지만, 그는 이미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옆에 누워 있었어요.
영국을 구한 기계를 설계한 사람이, 결국 자신을 처벌한 나라에서 영면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베어 문 것이 사과였는지, 세상을 향한 조용한 말 한마디였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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