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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공자·맹자·순자.
셋 중 한 명만 공자 사당에서 쫓겨났어요.
쫓겨난 건 순자예요.
그런데 이 사람, 쫓겨나기 전까지 당대 유학계의 정점에 있었어요.
순자(BC 313~238무렵)는 전국시대 말 직하학궁의 좨주를 세 번 역임한 인물이에요.
직하학궁은 제나라 제후가 세운 국립 학술원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가가 운영하는 최상위 연구대학이에요.
그 학교의 총장직을 세 번 맡은 거예요.
그런데 그가 죽고 약 1000년이 지난 송나라 때, 성리학자들이 그를 이단으로 규정해버려요.
공자 사당에서 그의 신위를 뽑아내고 다시는 복귀시키지 않았어요.
평생 모교에 헌신한 최고 교수가 사후 동문회 명부에서 삭제된 격이에요.
그 황당한 추방의 이유가 바로 순자의 핵심 주장에 있었어요.

맹자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말한 지 50년 뒤, 순자는 정반대를 선언했어요.
순자의 대표작 『순자』 「성악편」은 이렇게 시작해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하다는 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 즉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 씨앗을 품고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거예요.
갓난아기는 배우지 않아도 형제 손에서 우유병을 빼앗아요.
양보는 누가 가르쳐야 생기는 거예요.
순자는 바로 이런 장면에서 인간의 본성을 읽었어요.
그래서 순자가 내린 처방이 예(禮)와 교육이에요.
예는 단순히 절하고 인사하는 형식이 아니라, 인간이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게 해주는 모든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가리켜요.
나무도 먹줄을 따라 깎아야 곧아지듯, 인간도 예를 따라야 비로소 선해진다는 게 순자의 비유였어요.
결국 맹자와 순자는 같은 공자를 뿌리로 두고 정반대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맹자는 "원래 좋은데 환경 때문에 나빠지는 거다", 순자는 "원래 나쁜데 교육으로 좋아지는 거다".
송나라 성리학자들은 맹자 쪽을 정통으로 확립하면서 순자를 밀어냈어요.

순자의 강의실에서 진시황의 두 책사가 함께 자랐어요.
이사(李斯)와 한비(韓非), 두 사람은 순자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동기예요.
같은 스승 아래서 같은 텍스트를 읽었죠.
이사는 훗날 진시황의 재상이 돼서 군현제와 도량형 통일을 설계했어요.
군현제는 전국을 황제가 직접 임명한 관리로 다스리는 중앙집권 행정 시스템이에요.
지금 우리가 아는 동아시아 행정 구조의 원형이 이사의 손에서 나온 거예요.
한비는 『한비자』를 써서 법가 사상을 집대성했어요.
법가는 인간을 도덕으로 설득하는 대신 법과 형벌로 통제해야 한다는 사상이에요.
진시황이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인간 교화를 가르친 스승 밑에서, 인간 통제 시스템을 설계한 제자 둘이 나온 거예요.
평화주의 윤리학 교수의 수제자들이 제국의 행정가와 감시국가 설계자가 된 셈이죠.

스승이 죽고 25년 뒤, 그 제자는 스승의 동료들이 쓴 책을 전부 태웠어요.
기원전 213년, 이사는 진시황에게 직접 건의했어요.
의약·농업·점복서를 제외한 제자백가의 모든 책을 30일 안에 태우라는 명령, 분서령(焚書令)이에요.
이 건의를 직접 진언한 사람이 유학자의 수제자였어요.
이듬해엔 갱유(坑儒)가 이어졌어요.
공자의 가르침을 외우고 가르치던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땅에 묻은 사건이에요.
분서와 갱유, 이 두 단어는 이후 2000년간 폭정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았어요.
유학자 순자에게 배운 자가 유학 자체를 멸절시킬 명령서를 썼어요.
평생 책을 가르친 지도교수의 수제자가 25년 뒤 동료 교수들의 책을 불태우는 광경이 된 거죠.
순자는 "인간은 교육으로 선해질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 교육을 받은 제자가 교육 자체를 없애는 명령을 내렸어요.
순자의 성악설이 틀린 걸까요, 맞은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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