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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덕경은 자발적으로 태어난 책이 아니에요.
국경 검문관이 길을 막아 받아낸 강제 원고 5천 자였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주나라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어요.
주나라는 고대 중국의 왕조 중 하나인데, 수백 년을 존속한 뒤 사방에서 제후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혼란에 빠진 상태였어요.
노자는 그 꼴을 보다가 짐을 꾸렸어요.
목적지는 서쪽이었어요.
그런데 함곡관에서 발이 묶였어요.
함곡관은 주나라 서쪽 끝에 있는 국경 관문인데, 오늘날로 치면 출국 심사대 같은 곳이에요.
그 관문을 지키던 검문관 윤희가 노자를 알아봤어요.
그는 노자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말했어요.
"가르침을 남기지 않으면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노자는 그 자리에서 5천여 자를 써서 건네고 관문을 떠났어요.
그게 도덕경이에요.
그리고 그 첫 문장은 이랬어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서 중 하나가, 관리에게 붙들려 마지못해 쓴 원고였던 거예요.

노자는 직업이 있었어요.
수장실(守藏室)의 사관, 쉽게 말하면 주나라 왕실 도서관과 문서보관소의 책임자였어요.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史記)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수장실은 왕실의 법령, 외교 문서, 수백 년 치 역사 기록이 모두 집결하는 곳이에요.
노자는 그 방대한 문헌들을 평생 관리하고 읽었어요.
그러니까 당대에 책을 가장 많이 본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결론이 이거예요.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知者不言)
책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책의 한계를 가장 분명하게 못 박은 셈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평생 일한 엔지니어가 은퇴하면서 "인터넷으로는 지혜를 전달할 수 없어"라고 쓴 격이에요.
그 말이 더 무거운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에요.

공자는 노자를 만나고 한동안 입을 닫았어요.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딱 한마디만 했어요.
"나는 오늘 용을 봤다."
공자는 오늘날에도 가장 유명한 동아시아 사상가 중 한 명이에요.
그는 예(禮), 그러니까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 질서와 도덕을 평생 연구하고 가르쳤어요.
그 공자가 젊은 시절 예에 대해 묻기 위해 노자를 직접 찾아갔어요.
그런데 노자는 예상 밖의 말을 꺼냈어요.
"그대가 말하는 옛 성인들은 이미 뼈가 흙이 되었소."
"교만과 욕심을 버리시오."
공자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돌아왔어요.
제자들은 스승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때 공자가 꺼낸 표현이 바로 "용을 봤다"는 거였어요.
용은 동아시아 신화에서 바람을 타고 구름 속에 숨어 있는 존재예요.
존재는 분명하지만, 잡거나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
공자가 노자를 용에 빗댄 건, 말로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봤다는 고백이었어요.
이 일화는 사기와 장자(莊子,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철학자 장주가 쓴 책) 두 곳에 모두 기록되어 있어요.
동아시아 사상사를 양분한 두 거인이 만났을 때,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압도한 장면이었어요.

노자의 무덤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그는 도덕경을 남긴 그날 소를 타고 국경을 넘었고, 그 뒤를 본 사람이 없어요.
5천 자를 써준 노자는 청우(靑牛), 그러니까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을 넘었어요.
이후 그의 행적은 아무도 몰라요.
죽은 곳도, 무덤도, 묘비도 발견된 적이 없어요.
후대 도교(道敎, 노자의 사상을 종교로 발전시킨 흐름)는 그에 대한 전설을 만들어냈어요.
그가 인도까지 가서 부처가 되었다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에요.
노자가 서쪽 이민족을 교화했다는 뜻인데,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어요.
결국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의 저자가, 책을 건네준 바로 그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예요.
도덕경의 첫 줄은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였어요.
그리고 노자는 스스로 그 문장을 증명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책.
그 책이 2500년 뒤에도 읽히는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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