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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의사가 살아있는 뱀의 심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박동을 세고 있었다.
1600년대 초, 런던의 어느 밀실 안 이야기다.
그 사람은 윌리엄 하비였다.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주치의, 귀족들이 신뢰하는 가장 권위 있는 의사였다.
그런데 그는 책상 위에 살아있는 동물을 올려놓고, 직접 손을 더럽혀가며 심장이 뛰는 모습을 관찰했다.
당시 의학계는 그런 행위를 경멸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해부하는 건 도살업자나 하는 일이었고, 점잖은 의사라면 죽은 사람의 시체 해부와 갈레노스의 교과서만을 권위로 인정해야 했다.
갈레노스는 2세기 고대 로마의 의사로, 그가 쓴 의학 이론은 무려 1500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비는 달랐다.
뱀, 물고기, 개구리, 개 등 80여 종의 동물을 직접 살아있는 상태로 해부하며 심장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차가운 동물일수록 심장이 천천히 뛰어서 수축과 이완을 한 박자씩 셀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1628년, 그는 이 관찰 결과를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하여』(De Motu Cordis)라는 책으로 냈다.
마치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회사 매뉴얼을 신입사원이 처음부터 한 줄씩 직접 해보고 "이거 틀렸는데요"라고 손을 든 것과 같았다.
1500년짜리 교과서를 손으로 직접 검증한 것이다.
그는 자기 팔에 직접 끈을 묶었다.
환자가 아니라, 자신을 실험대 위에 올린 것이다.
팔뚝에 끈을 조이자 정맥이 부풀어 올랐다.
하비는 손가락으로 정맥을 눌러가며 피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보였다.
정맥 안에는 판막이 있었다.
판막은 문처럼 한쪽으로만 열리는 구조여서, 피가 역류하지 못하게 막아준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한 방향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피는 정해진 방향으로 순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비가 내놓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계산이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내보내는 피의 양을 측정하고 분당 박동수를 곱해봤더니, 심장이 한 시간 동안 펌프질하는 피의 양이 사람 몸무게의 세 배에 달했다.
"그 피가 매번 새로 만들어진다고? 그럼 그 재료는 어디서 오나?"
1500년 동안 의사들이 믿어온 갈레노스 이론은 '간이 피를 계속 새로 만들어 온몸으로 내보낸다'는 것이었다.
하비는 그게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의학이 처음으로 권위가 아닌 산수와 측정으로 결판난 순간이었다.
책이 나오자 환자들은 그를 떠났다.
동료 의사 존 오브리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하비의 진료 수입이 크게 줄었고, 동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의사들의 핵심 치료법은 사혈, 즉 몸에서 피를 빼내는 것이었다.
나쁜 피가 쌓여 병이 생긴다는 갈레노스 이론에 근거한 치료였고, 의사 대부분이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비가 피가 순환한다는 걸 증명하면 사혈의 근거가 흔들린다.
환자 입장에서도 찜찜했을 것이다.
"내 혈액 순환 시스템을 연구한 의사가, 왜 거기서 피를 빼고 있지?"
진실을 발견한 대가가 환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었다.
회사의 핵심 사업이 사실은 효과가 없다고 증명한 직원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비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도 하비는 물러서지 않았다.
왕실 주치의라는 자리가 그를 완전히 고립되지 않게 해줬고, 세월이 지나면서 젊은 의사들은 점점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가 가장 아끼던 것은 책이 아니라, 책에 담지 못한 노트들이었다.
하비는 영국 왕 찰스 1세의 주치의가 됐다.
1642년, 왕과 의회가 충돌하면서 잉글랜드 내전이 터졌다.
하비는 왕을 따라 전장 가까이 있었다.
에지힐 전투 당시, 그는 찰스 1세의 두 어린 왕자를 데리고 전장 근처 산울타리 뒤에 숨었다.
무기 대신 책을 꺼내 왕자들이 읽을 수 있게 해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런데 그 사이 런던의 자택이 의회파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다.
평생에 걸쳐 기록한 동물 해부 노트들, 아직 출간하지 않은 원고들이 모두 사라졌다.
한 번 잃으면 다시 채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찰스 1세는 1649년 처형됐다.
하비는 모든 것을 잃은 것에 가까웠다.
환자도 줄었고, 동료에게 외면당했고, 평생 쓴 연구 노트도 사라졌다.
그래도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하여』는 남았다.
그 얇은 책 한 권이 의학 교과서 1500년을 뒤집었고, 오늘날 우리가 혈압을 재고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하비는 말년에 조카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조용히 세상을 떴다.
약탈당한 노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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