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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날 파인만이 가져간 무기는 단 하나, 얼음물 한 컵이었어요.
1986년 1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공중분해됐어요.
7명의 우주인이 숨졌고, 미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어요.
NASA는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각계 전문가들이 두꺼운 보고서를 들고 청문회장에 나타났어요.
65세의 노벨상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달랐어요.
회의실 식탁 위의 얼음물 컵을 집어들고, 자신 앞에 있던 작은 고무 링을 그 안에 담갔어요.
몇 초 뒤 꺼낸 고무는 탄성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어요.
"이게 문제예요."
O-링은 챌린저호 고체로켓 부스터의 이음새를 막는 고무 패킹이에요.
발사 당일 새벽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NASA 내부 엔지니어들은 그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얼음물 한 컵으로 증명한 건 파인만이었어요.
수백 명의 전문가가 수개월 동안 못 한 일을 그는 1달러도 안 되는 실험 하나로 끝냈어요.
100쪽짜리 보고서로 가득한 회의실에서 누군가 그냥 직접 보여준 셈이에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금고를 연 도구는 드라이버도 다이너마이트도 아닌, 인간의 게으름이었어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원자폭탄을 극비리에 만들던 계획이에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였고, 당연히 기밀문서 금고가 곳곳에 있었어요.
20대의 파인만은 그 금고들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어요.
비결이 뭐였냐고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공장 출고 기본 비밀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었거든요.
아니면 생년월일이나 원주율(3.14159...)처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숫자를 썼어요.
금고를 열면 파인만은 쪽지 하나를 남겼어요.
"Guess who?(누가 열었게요?)"
동료들은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나중엔 진짜로 무서워졌어요.
인류 최강 무기의 설계도가 그렇게 허술하게 보관되고 있었으니까요.
파인만이 진짜로 겁나게 만든 건 "나도 열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무도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어요.

파인만에게 물리학과 봉고는 사실 같은 일이었어요.
둘 다 손으로 패턴을 찾는 놀이였거든요.
1965년,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어요.
양자전기역학은 빛과 전자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는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의 핵심이에요.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규칙을 수식으로 정확히 써낸 거예요.
그런데 노벨상 연락을 받은 날 아침, 그는 봉고를 치고 있었어요.
봉고는 쿠바에서 온 작은 쌍둥이 드럼이에요.
파인만은 평생 봉고 연주자로 활동했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삼바 학교 행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어요.
삼바 학교는 카니발을 준비하는 지역 음악 공동체인데, 세계에서 가장 추상적인 수학을 다루는 물리학자가 가장 몸으로 때려박는 음악에 빠진 셈이에요.
파인만이 한번은 이렇게 말했어요.
"물리를 배우는 건 섹스를 배우는 것과 같아요. 그게 응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우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즐겁지 않은 일은 안 했어요.
그리고 즐거운 일은 노벨상이든 봉고든 똑같이 진지하게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물리학자가 죽은 아내에게 편지를 썼어요, 답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파인만의 첫 아내 알린 그린바움은 결핵을 앓았어요.
결핵은 당시 치료법이 없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도 파인만은 그녀와 결혼했어요.
주변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녀의 폐가 어떤 상태인지와 관련이 없어요."
1945년 6월, 알린은 로스앨러모스 인근 병원에서 숨을 거뒀어요.
파인만은 그 순간 병실의 시계가 멈춰 있는 걸 봤어요.
알린이 자주 만지작거려 고장 직전이었던 시계가, 마침 그 시간에 완전히 멈춘 거였어요.
그로부터 2년 뒤, 파인만은 알린에게 편지를 썼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단 하나는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이에요."
그 편지는 죽을 때까지 부쳐지지 않았어요.
파인만의 유품 속에서 발견된 건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우주의 가장 차가운 법칙을 다루던 사람이 남긴, 가장 따뜻한 문장이었어요.
어쩌면 그 편지 한 장이, 수백 편의 물리학 논문보다 파인만을 더 잘 설명하는 말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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