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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가 발견한 위성 네 개의 이름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어요.
메디치 가문의 것이었습니다.
1610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네 개를 발견했어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행성 주위를 도는 천체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위성들에 자기 이름을 붙이는 대신, 당시 토스카나를 지배하던 코시모 2세 메디치 대공의 이름을 붙였어요.
책 이름은 『별의 전령(Sidereus Nuncius)』, 그리고 위성들의 공식 이름은 '메디치의 별'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스타트업 창업자가 신제품 코드명을 투자자 이름으로 짓는 것과 같아요.
결과는 즉각적이었어요. 갈릴레오는 곧바로 파도바 대학 교수직을 떠나 피렌체 궁정 수학자 자리를 얻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천문학적 발견 순간이, 동시에 역사상 가장 대담한 취업 청탁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세운 교황은, 한때 그를 위해 시를 쓴 친구였어요.
마페오 바르베리니라는 추기경이 있었어요.
그는 1620년 무렵, 갈릴레오를 칭찬하는 라틴어 시 「위험한 아첨(Adulatio Perniciosa)」을 직접 써서 헌정했습니다.
고위 성직자가 과학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런 일은 당시에도 흔치 않았어요.
그런데 1623년, 이 추기경이 교황 우르바노 8세로 즉위합니다.
갈릴레오는 바로 로마로 달려갔고, 6주 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교황을 만났어요.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가설로서 다루는 책을 써도 좋다"는 사실상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추천서를 써 준 상사가 몇 년 뒤 자신을 해고하는 자리에 앉는 상황. 갈릴레오의 이야기는 정확히 그렇게 흘러갑니다.

갈릴레오의 책 속 "심플리치오"가 한 말은, 사실 친구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말이었어요.
1632년 출간된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Dialogo)』는 세 인물이 토론을 벌이는 대화체 책이에요.
천동설 쪽을 대표하는 인물의 이름이 '심플리치오(Simplicio)'인데, 이탈리아어와 라틴어 어원을 통해 풀면 "단순한 자", 즉 "멍청이"에 가까운 뉘앙스입니다.
문제는 이름만이 아니었어요.
갈릴레오는 교황 우르바노 8세가 평소 즐겨 하던 신학적 반박, "신은 어떤 방식으로도 세계를 만들 수 있었으니, 인간이 그 방식을 확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거의 그대로 심플리치오의 대사로 옮겼습니다.
책을 받아든 교황은 자신의 말이 바보의 입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는 격노했습니다.
자신을 살려준 후원자의 논리를 책 속 가장 멍청한 캐릭터의 대사로 넣는다. 갈릴레오가 이걸 의도했는지, 아니면 정말 몰랐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에요.
하지만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1633년,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소환되었어요.

교회가 입을 다물라고 명령한 9년간, 그는 물리학의 미래를 적어 내려갔어요.
1633년 6월, 69세의 갈릴레오는 로마 종교재판소에서 무릎을 꿇고 지동설을 공개 철회했어요.
이후 피렌체 외곽 아르체트리 별장에 가택연금되었고, 시력은 거의 잃었습니다.
교회의 관점에서는 완벽한 침묵 선고였어요.
그런데 갈릴레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새로운 두 과학(Discorsi)』을 완성했어요.
낙하하는 물체가 어떻게 가속되는지, 운동이 어떤 수학적 법칙을 따르는지를 체계화한 이 책은 훗날 뉴턴이 물리학을 완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책은 이탈리아에서 출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갈릴레오는 원고를 네덜란드 레이덴으로 몰래 보내 1638년 출판했습니다.
감시 속에서, 거의 실명 상태로, 조수에게 불러주는 방식으로 완성한 책이었어요.
종교재판이 그에게서 빼앗으려 했던 것은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목소리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 침묵의 9년이,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하게 만든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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