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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재판관도 변호사도 아닌 19살 소년이 직접 판결을 집행하러 북경 법정에 들어갔어요.
1629년, 황종희는 품속에 쇠송곳을 숨긴 채 그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간 거예요.
그가 찌른 사람은 피고석에 앉아 있던 허현순과 최응원이었어요.
두 사람은 위충현 일파였어요.
위충현은 명나라 말기 황실 안에서 권력을 쥔 환관 집단의 수장으로, 반대파를 체포하고 고문해 죽이던 인물이에요.
황종희의 아버지 황존소는 그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졌어요.
아버지가 죽은 뒤 황종희는 혼자 북경으로 올라갔어요.
재판이 열렸지만 그는 법이 제대로 처벌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오늘로 치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집행유예 판결만 받을 것 같아 방청석에서 일어나 피고석으로 직접 걸어간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다음이 더 놀라워요.
명 조정은 황종희를 처벌하는 대신 "효자"라고 칭송하며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19살 소년의 쇠송곳이 법정보다 먼저 정의를 집행했고, 조정은 그것을 묵인한 거예요.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에, 그는 황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해악이라고 책에 적었어요.
1663년, 54세의 황종희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완성해요.
"어둠의 시대에 새 군주를 기다리며 쓴 기록"이라는 뜻이에요.
그 첫 편 「원군(原君)」에서 그는 이렇게 써요.
"위천하지대해자 군이이의(爲天下之大害者 君而已矣)"
"오늘날 천하의 가장 큰 해악은 군주 한 사람뿐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군주가 하늘의 뜻을 받은 존재라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황종희는 정반대를 주장해요.
원래 군주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역할인데, 이 제도가 오히려 세상을 망쳐왔다는 거예요.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가 사회악이다"라고 책을 내는 것과 같아요.
그는 재상이 황제를 견제하는 권한을 되살려야 하고, 학교는 정치를 비판하는 여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도 썼어요.
백성의 사유재산은 국가가 침범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담겼어요.

명나라가 무너지자 황종희는 펜을 내려놓고 칼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 칼이 꺾인 뒤, 그는 더 위험한 것을 꺼냈어요.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淸)이 중원을 차지했어요.
황종희는 절강 해안에서 세충영(世忠營)이라는 의병 부대를 직접 조직해 청에 맞서 싸웠어요.
무려 8년이었어요.
결국 패했어요.
청은 이긴 뒤 황종희에게 관직을 제안했어요.
황실이 명나라 유학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만든 특별 시험 박학홍사과에 추천하겠다는 손도 내밀었는데, 그는 평생 거절했어요.
대신 고향 여요(餘姚, 지금의 절강성 산간 지역) 산중에 은거하며 오직 저술에만 몰두했어요.
쇠송곳을 쥐고 원수를 찌르던 청년이, 칼로 바꾸지 못한 세상을 글로 다시 설계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평생 거리에서 싸우던 운동가가 산속으로 들어가 "진짜 바꿔야 할 것은 제도 자체였어"라고 기록하기 시작하는 그 장면이에요.

1903년 도쿄의 한 인쇄소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밤마다 몰래 찍어내던 책이 있었어요.
240년 전 여요 산속에서 한 늙은 유학자가 쓴 책이었어요.
쑨원과 량치차오 등 청나라 타도를 꿈꾸던 혁명가들이 『명이대방록』을 대량으로 복각해 중국 본토로 밀반입했어요.
반청 혁명의 선전물로 뿌린 거예요.
량치차오는 나중에 이렇게 기록했어요.
"이 책이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은 루소의 민약론에 버금간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즉 민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책인데, 동아시아에서 그와 같은 무게를 가진 책이 『명이대방록』이라는 얘기예요.
황종희는 공화주의 혁명 같은 건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는 명나라 왕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 책을 썼어요.
하지만 "황제가 세상의 가장 큰 해악이다"라는 그 한 문장은, 240년 후 신해혁명(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혁명)을 이끈 세대의 손에서 황제 제도를 영구히 끝냈어요.
오늘 밤 쓴 일기 한 편이 200년 뒤 어느 나라의 건국 문서가 된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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