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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조선 유학을 반으로 쪼갠 논쟁은, 서른다섯 살 두 동문이 주고받은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어요.
1712년, 충청도 외암이라는 산골 마을.
이간이라는 학자가 살던 곳이자, 그의 호(號)이기도 한 마을 이름이에요.
거기서 이간과 그의 동문 한원진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질문은 하나였어요.
"인간과 동물, 심지어 사물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
두 사람은 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한 절친한 동기였어요.
처음엔 그냥 학문 토론이었어요.
편지 몇 통으로 끝낼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 질문이 200년짜리 대논쟁의 도화선이 됐어요.
훗날 이 논쟁은 호락논쟁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충청도 학자들(호론)과 서울·경기 학자들(낙론)이 두 세기 동안 맞붙은 조선 유학 최대의 사상 분열이에요.
절친한 동기 둘이 가벼운 세미나 토론을 시작했다가 학계 전체를 두 파로 갈라놓은 셈이에요.

스승의 판정은 한 줄이었어요.
그 한 줄로 이간은 문중에서 지워졌어요.
논쟁이 깊어지자 두 사람은 스승 권상하에게 판정을 구했어요.
권상하는 조선 유학의 거목 송시열의 수제자로, 당시 충청 유학계의 최고 권위자였어요.
권상하의 답은 한원진 편이었어요.
"인간과 사물의 본성은 다르다"는 호론의 손을 들어준 거예요.
이간은 반박 서찰을 거듭 보냈어요.
하지만 스승의 마음은 끝내 바뀌지 않았어요.
학문적으로 더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던 제자가 스승에게 외면당한 거예요.
오늘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지도교수 앞에서 논문 심사를 받으러 갔더니 "네 친구 주장이 맞다"는 한 줄 평만 돌아온 거예요.
그리고 그 뒤로 학회에서 조용히 배제되기 시작한 거죠.
이간의 주장 낙론은 문중 바깥으로 밀려났어요.
그래도 이간은 반박을 멈추지 않았어요.

개에게도 본성이 있는가.
이 질문은 조선 후기에 그냥 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겉으로 보면 이 논쟁은 "개나 소, 풀에게도 인의예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에요.
인의예지는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네 가지 핵심 덕목인데, 한마디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들"이에요.
그런데 이 질문의 속뜻은 달랐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본성의 차등이 있는가?"였어요.
이간의 낙론은 "모든 존재의 본성은 본래 같다"고 봤어요.
이 논리를 조금만 확장하면 무서운 결론이 나와요.
양반과 상민의 본성도 같고, 조선인과 이른바 '오랑캐'로 불리던 청나라 사람의 본성도 같다는 거예요.
반면 한원진의 호론은 "인간과 사물은 다르다"고 봤어요.
그리고 이 논리 위에서는 신분 간, 민족 간 위계질서를 정당화할 수 있었어요.
온라인에서 "반려견도 감정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결국 "그럼 인간이 특별한 이유가 뭐냐?"는 존재론 싸움으로 번지는 것과 비슷한 구조예요.
다만 그 철학적 결론이 실제 사회 제도의 근거가 됐다는 게 달랐을 뿐이에요.

이간은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끝내 몰랐어요.
그는 1727년, 쉰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생전의 그는 스승에게 외면당했고, 저서 『외암유고』는 그가 죽고 나서야 정리됐어요.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뒤, 조선 후기의 개혁 지식인들이 이간의 낙론을 다시 꺼내 들었어요.
박지원, 홍대용 같은 북학파 실학자들이에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적극 배우자고 주장한 이 학자들은 이렇게 물었어요.
"청나라가 '오랑캐'라서 배울 것이 없다고? 그런데 그들도 우리와 본성이 같은 인간 아닌가?"
그 논리의 뼈대가 바로 이간의 낙론이었어요.
이간의 "모든 존재의 본성은 같다"는 주장은 결국 신분 개혁론의 철학적 근거가 됐어요.
생전에 패배한 논리가 조선이 근대의 문턱에 서던 시절에 다시 살아난 거예요.
당대에 외면받다가 사후에 재평가되는 예술가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예요.
이간이 딱 그 구조예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재평가는 혼자가 아니라 조선 전체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쓰였다는 거예요.
1712년 충청도 산골의 편지 한 통.
쓴 사람은 그냥 동문 친구에게 학문적 반박을 보냈을 뿐이에요.
그 편지가 200년 뒤 신분제를 흔드는 사상의 씨앗이 됐다는 걸, 이간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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