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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조선 최고의 천재는 다섯 살에 인생의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 때문에 평생을 떠돌았어요.
1439년, 김시습은 다섯 살이었어요.
그 나이에 『중용』과 『대학』을 줄줄 외웠는데, 이 두 책은 조선 선비들이 수십 년을 공부해야 읽을 수 있는 유교 경전이에요.
오늘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이 법철학 원서를 통째로 암기한 셈이에요.
소문을 들은 세종대왕이 직접 불렀어요.
승정원,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격에 데려와 직접 시험을 쳤어요.
세종은 비단 50필을 하사하며 "장차 크게 쓰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결국 과거 시험조차 치르지 않아요.
왕이 직접 장래를 보장한 소년이 평생 벼슬을 거부하고 전국을 떠도는 방랑자로 살았거든요.
그 이유는 그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있어요.

그는 미래를 불태웠어요.
정확히는, 자기가 쓴 종이 전부를요.
1455년, 김시습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이에요.
그 산속 절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들렸어요.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이 됐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세조의 즉위예요.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큰 사건이에요.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갔어요.
사흘을 통곡했어요.
사흘이 지나자 자신이 쓴 책과 과거 공부용 서책을 모두 불 속에 던졌어요.
그다음엔 머리를 깎았어요.
스스로 승려가 된 거예요.
"장차 크게 쓰겠다"고 한 그 왕의 나라를 거부하기 위해, 왕이 기다리던 천재가 중이 된 거예요.

조정의 모든 대신이 등을 돌린 시체 옆에, 광인 취급받던 떠돌이 승려가 삽을 들고 서 있었어요.
1456년,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던 신하들이 발각됐어요.
사육신이에요. 성삼문·박팽년을 포함해 목숨을 바친 여섯 충신을 부르는 말이에요.
이들이 처형당하고 그 시신이 한강 노량진 모래밭에 버려졌어요.
문제는 그 시신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는 거예요.
시신을 수습하면 "역적의 편"으로 몰려 함께 죽던 시대였거든요.
가족조차 모른 척해야 했어요.
그런데 한밤중에 누군가 혼자 그 자리에 왔어요.
전승에 따르면 그 사람이 바로 김시습이에요.
삽 하나 들고 혼자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묻어줬어요.
오늘날 서울 동작구에 있는 사육신묘가 그 자리예요.
평소엔 미친 중, 쓸모없는 방랑자로 비웃음 받던 사내가 목숨을 건 유일한 조문객이었어요.
겉으로는 세상을 등진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가장 분명하게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죠.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은 궁궐이 아니라, 경주 금오산의 바람 부는 암자에서 태어났어요.
1465년 무렵,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자리를 잡았어요.
오늘날의 경주 남산이에요.
그 산속에서 7년을 머물며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어요.
『금오신화』는 조선 최초의 한문 단편소설집이에요.
귀신과 산 자의 사랑, 죽음 뒤에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다룬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판타지이자 멜로예요.
완성 후 그는 원고를 석실에 숨기며 이렇게 남겼어요.
"후세에 반드시 알아볼 자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비단 50필과 왕의 약속을 받은 신동은 결국 왕국이 아닌 문학사에 자기 이름을 새겼어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산속 암자에서 혼자 쓴 소설이 수백 년이 지나 한국 문학의 시작점이 됐거든요.
"장차 크게 쓰겠다"고 한 세종의 약속, 그건 결국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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