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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 외운 것의 절반 이상을 내일 이미 잊는다는 사실을, 한 독일인이 혼자 방에서 2년을 보내며 처음으로 증명했어요.
19세기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망각이 어떤 속도로 일어나는지 숫자로 재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존 단어나 문장을 쓰면 "이미 아는 것"이라는 변수가 끼어들어 실험이 오염돼요.
그래서 그는 아예 새로운 재료를 만들었어요.
"DAX", "BUP", "ZOL" 같은, 뜻도 없고 기억도 안 남는 음절들이에요.
2년 동안 혼자 방에 앉아 외운 무의미 음절이 2,000개가 넘어요.
실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어요.
외운 내용의 절반 이상이 하루 만에 사라졌고, 한 달이 지나면 거의 80%가 흔적도 없었어요.
에빙하우스는 이 패턴을 그래프로 그렸고, 오늘날 망각 곡선이라고 불려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같은 내용을 간격을 두고 한 번씩 더 보면 망각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는 것도 그가 발견했어요.
오늘날 어학 앱과 플래시카드 서비스가 전부 이 원리 위에서 돌아가요.
수술은 성공이었어요.
뇌전증 발작은 멈췄어요.
그런데 27세 청년 헨리 몰레이슨은 그날 이후 단 하루도 새로 기억하지 못하게 됐어요.
1953년,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윌리엄 스코빌은 헨리의 극심한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해마를 양쪽 모두 제거했어요.
해마는 뇌 안쪽에 있는 작은 구조로, 오늘 겪은 일을 내일도 기억하도록 장기 저장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해요.
이 부위가 사라지자, 헨리는 수술 이전의 기억은 멀쩡했지만 그 이후로는 새 기억을 전혀 만들지 못했어요.
매일 아침 병원에 오는 간호사를 그는 처음 보는 사람으로 대했어요.
같은 간호사에게 수십 번 "처음 뵙겠습니다"를 반복한 거예요.
자신이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거울을 보고 "이 노인이 누구지?"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헨리는 살아 있는 동안 개인 보호를 위해 "H.M."으로만 불렸고, 사망 후에야 본명이 공개됐어요.
그가 남긴 가장 큰 발견은 기억이 뇌 전체에 균등하게 퍼져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해마가 그 핵심에 있다는 거예요.
기억은 녹화된 영상이 아니에요.
꺼낼 때마다 조금씩 편집되는 파일에 가까워요.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이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어요.
1990년대, 그녀의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어릴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허위 이야기를 형제의 증언처럼 포장해 전달했어요.
그랬더니 참가자의 약 25%가 실제로 그 기억을 떠올렸어요.
심지어 "그날 점원이 친절했다", "엄마가 울었다" 같은 세부 사항까지 스스로 추가했어요.
이 참가자들은 거짓말한 게 아니에요.
정말로 그 기억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기억은 사실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사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를 매번 새로 구성하는 거예요.
로프터스의 연구는 법정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목격자 증언이 가장 강력한 증거로 쓰이던 시절이었거든요.
실제로 미국에서 DNA 증거로 무죄가 밝혀진 사건의 약 70%에서 허위 목격자 증언이 포함돼 있었어요.
결국 "나는 분명히 그 얼굴을 봤어요"라는 말이, 사실이 아닐 수 있어요.
완벽한 기억이 축복이 아닐 수 있다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솔로몬 셰레솁스키예요.
소련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가 1920년대부터 약 30년간 연구한 인물이에요.
평범한 신문 기자였던 셰레솁스키는, 기억력 검사를 해보니 한계가 없었어요.
루리야가 수십 개의 숫자와 단어를 불러주면 한 번 듣고 완벽히 재현했어요.
10년 뒤에 다시 불러도 같았고, 20년 뒤에도 오류가 없었어요.
비결은 공감각이었어요.
공감각은 서로 다른 감각이 동시에 연결되는 현상이에요.
숫자를 들으면 색깔이 보이고, 단어를 들으면 냄새나 질감이 함께 느껴지는 식이에요.
셰레솁스키가 루리야에게 한 말이에요. "7이라는 숫자는 진지하고 어두운 회색, 수염 난 남자의 얼굴 같은 느낌이에요."
단어 하나가 그에겐 하나의 그림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멈췄어요.
단어마다 이미지가 폭발처럼 터지는데, 그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해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거든요.
얼굴을 알아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사람의 표정이 매번 달라 보여서, 어제 만난 얼굴과 오늘 만난 얼굴을 같은 사람으로 연결하기 어려웠어요.
루리야는 이 기록을 책 《기억술사의 마음》에 담았어요.
셰레솁스키가 가장 원했던 것은 "좀 잊을 수 있었으면"이었어요.
어쩌면 망각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핵심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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