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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결혼 3년 만에 처자식을 두고 절로 들어간 스님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에요.
훗날 한국 불교 최고 지도자 자리까지 오른 사람의 시작이 이랬습니다.
1936년 무렵,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어요.
본명은 이영주(李英柱), 결혼도 했고 딸도 있었습니다.
출가를 결심한 이유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핵심은 하나예요.
"삶의 근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 앞에서는 결혼도, 아이도, 미래 계획도 다 작아 보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잘나가는 직장인이 갑자기 사표 내고 히말라야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가족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요.
그의 딸은 훗날 스님이 됐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러 해인사까지 찾아갔지만, 성철 스님은 딸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어요.
가족도 삼천 배를 해야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8년 동안 단 한 번도 눕지 않았습니다.
잠도 앉아서 잤어요.
이건 단순한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원칙이었습니다.
장좌불와(長坐不臥)라는 수행법이에요.
"길게 앉아서 눕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몸이 수평으로 눕는 순간 마음도 느슨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어요.
1947년,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 동료 스님들과 수행 결사를 시작했습니다.
결사란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함께 모인 수행 집단이에요.
이 봉암사 결사는 해방 이후 흐트러져 가던 한국 불교를 다시 세운 역사적 운동으로 기록됩니다.
8년이면 올림픽이 두 번 열리는 시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침대에 한 번도 눕지 않은 사람이 있었어요.
겨울 산사에서, 자발적으로요.
이 수행이 끝날 즈음, 성철 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변 스님들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한국 불교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그가 떠오른 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한국 불교 최고 지도자 자리인 종정에 오른 사람이 취임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해인사 산에 있겠다는 거였습니다.
1981년, 성철 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습니다.
조계종은 한국 불교 최대 종파이고, 종정은 그 최고 지도자예요.
취임식은 서울에서 열렸지만, 그는 가야산 해인사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법어(法語), 즉 스님의 공식 가르침을 메시지로 전했어요.
"자기를 바로 봅시다." 이것이 그의 취임사였습니다.
그를 만나려면 삼천배(三千拜)를 해야 했습니다.
삼천 번 절이에요.
쉬지 않고 해도 4시간이 넘고, 실제로는 며칠에 나눠야 하는 양이었습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언론인도 예외가 없었어요.
삼천 배를 마치지 않으면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앞에 서려면 먼저 자신을 완전히 낮춰야 했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이 남긴 가장 유명한 법어입니다.
딱 열한 글자인데, 수십 년째 사람들 입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이건 선불교(禪佛敎)의 수행 단계를 압축한 말입니다.
선불교는 논리 대신 직접 체험으로 깨달음을 찾는 불교의 한 갈래예요.
처음엔 산이 그냥 산이지만, 깨달음에 이르면 똑같이 생긴 산이 완전히 다른 산으로 보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겁니다.
어릴 때 엄마는 그냥 엄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불완전하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이 보여요.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성철 스님은 1993년 입적했습니다.
불교에서 스님이 돌아가시는 걸 입적(入寂)이라 해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열반송(涅槃頌)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남녀군생을 속여왔으니, 그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구나."
평생 가르침으로 존경받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 "나는 다 속였다"였습니다.
겸손인지 진심인지, 그 뜻을 두고 사람들은 지금도 이야기해요.
어쩌면 그것마저 마지막 화두로 남겨놓고 떠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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