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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81년,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 많은 사람이 모였어요. 성철이라는 스님이 한국 불교에서 가장 높은 어른 자리, 그러니까 조계종의 종정에 오르는 날이었거든요. 다들 귀를 쫑긋 세웠어요. 큰스님이 첫 말씀으로 무슨 대단하고 깊은 가르침을 줄까 잔뜩 기대했으니까요. 그런데 스님이 남긴 말은 딱 이거였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걸 누가 몰라요? 다섯 살짜리도 아는 말이잖아요. 사람들은 살짝 김이 빠졌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한마디는 그 뒤로 40년이 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어요. 도대체 이 뻔한 말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그럴까요?
먼저 성철 스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이 말이 다르게 들려요. 성철 스님은 1912년부터 1993년까지 살면서 한국 현대 불교를 대표한 승려예요. 이분은 정말 독하게 수행한 걸로 유명해요. 한 번 앉으면 눕지 않고 앉은 채로 잠을 자는 수행을 무려 8년이나 했대요. 이걸 장좌불와라고 불러요. 우리는 하룻밤만 의자에 앉아 졸아도 다음 날 온몸이 쑤시잖아요. 그걸 8년이나 했다는 거예요. 또 평생을 산속 작은 암자에서 낡은 옷을 기워 입고 아주 검소하게 살았어요. 자기를 보러 멀리서 찾아온 사람한테도 그냥 만나 주지 않고, 부처님 앞에 3천 번 절을 하고 오라고 시켰고요. 그러니까 "산은 산"이라는 말은 그냥 문득 떠오른 말이 아니에요. 한평생을 바쳐 어느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거기서 내놓은 말이라는 걸 기억해 두세요.
선불교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산을 보는 데에는 세 단계가 있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산은 산이에요. 어린아이가 산을 보면 "저건 산이네" 하고 끝이죠. 아무 의심이 없어요.
그런데 공부를 깊이 시작하면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해요. "산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걸까? 내가 그냥 산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 아닐까?" 이쯤 되면 산이 산으로 안 보여요. 당연하던 게 다 흔들려요. 마치 글자를 처음 배운 아이가 '나무'라는 글자를 너무 오래 빤히 쳐다보다가 "어, 이게 왜 나무지?" 하고 낯설어지는 것과 비슷해요. 익숙하던 게 갑자기 수수께끼가 되는 거죠.
그러다 그 의심을 끝까지 통과하면, 다시 산은 산이 돼요. 똑같은 산인데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요. 모든 흔들림을 다 지나오고 나서 보는 산이거든요. 성철 스님이 말한 "산은 산, 물은 물"이 바로 이 세 번째 산이에요. 한 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로 왔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조금도 흔들림 없이 보는 눈인 거예요.
성철 스님이 정말로 세상을 흔든 주장은 따로 있어요. 바로 돈오돈수예요. 말이 어렵죠? 풀어 보면 간단해요. '돈오'는 한순간에 확 깨닫는 거고, '돈수'는 그 깨달음으로 닦는 일까지 그 자리에서 단번에 끝난다는 뜻이에요. 깨달음과 마무리가 한 묶음으로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거죠.
그때까지 한국 불교에서 오래 받아들이던 생각은 좀 달랐어요. 한순간 깨닫더라도, 그 뒤에 오래오래 조금씩 갈고닦아야 한다는 거였죠. 자전거를 한번 탈 줄 알게 돼도, 진짜 잘 타려면 계속 연습해야 하는 것처럼요. 이 생각은 700년도 더 전에 지눌이라는 큰스님이 세운 흐름이었어요.
성철 스님은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했어요. 제대로 깨달았다면 그 자리에서 이미 완전한 거지, 어설프게 깨닫고 평생 보충 수업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진짜 깨달음이 아니라고요. 이 주장 때문에 불교계에 큰 논쟁이 벌어졌어요. 700년 넘게 당연하게 여기던 생각에 한 사람이 맞선 거였으니까요. 그리고 이 논쟁이 오히려 한국 선불교의 색깔을 또렷하게 만들어 줬어요.
성철 스님의 말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건, 스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콕 와닿는 데가 있어서예요. 우리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보기가 참 어려워요. 친구를 볼 때도 '쟤는 원래 이런 애' 하는 선입견을 먼저 덧씌우고, 산을 봐도 '아, 등산하면 힘들겠다' 같은 생각부터 붙이죠. 그러니 산을 그냥 산으로, 물을 그냥 물로 보는 건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머릿속 잡생각을 다 걷어 내야 비로소 가능하거든요. 성철 스님은 그 단순해 보이는 자리에 평생을 걸었어요. 가장 쉬운 말 한마디 안에, 가장 어렵게 도달하는 경지를 담아 둔 셈이에요.
성철 스님은 한순간에 완전히 깨닫는다는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한국 선불교의 색깔을 또렷이 세운 현대 승려예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갖 의심과 흔들림을 다 통과한 끝에 다시 만나는 산을 가리켜요. 아무 의심 없이 산을 보던 어린 시절과, 그 산이 낯설어 흔들리던 시절을 지나, 마침내 있는 그대로를 흔들림 없이 보게 된 눈이죠. 가장 단순한 말이 가장 깊을 수 있다는 것, 그게 평생 눕지도 않고 수행한 성철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한마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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