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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스물 살의 라다크리슈난이 쓴 석사 논문의 목표는 단 하나였어요.
자기 교수를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이었죠.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은 인도 남부 티루타니의 가난한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집안 형편 덕분에 학비를 지원받는 선교사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마드라스 크리스천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어요.
힌두교를 미개한 종교로 보는 시각이 당연하게 통용되던 곳이었죠.
그런데 그의 교수 중 한 명이 "힌두 철학에는 진정한 윤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담당 교수가 수업 시간에 "너희 문화엔 도덕이 없어"라고 말한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라다크리슈난은 분개하는 대신 도서관으로 갔어요.
그가 쓴 것은 힌두 철학의 윤리 체계를 정면으로 변호하는 석사 논문이었어요.
제목은 「베단타 철학의 윤리학」. 베단타는 힌두 철학의 핵심 사상으로, 세계와 자아가 결국 하나라는 관점에서 도덕과 삶의 방식을 이야기해요.
이 논문은 훗날 그의 첫 번째 책이 됐어요.
적이 스승이 된 셈이에요.
선교사 학교의 공격이 없었다면, 라다크리슈난이 힌두 철학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동기도 없었을지 몰라요.

1936년, 인도는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어요.
그 해에 한 인도인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정식 교수직을 받았어요.
자리는 동방종교·윤리학 석좌교수직이었어요.
영국이 세계 각지의 지식을 정리하고 분류하던 그 교단에, 식민지 출신 인도인이 처음으로 서게 된 거예요.
그가 옥스퍼드에서 한 강의는 서양 청중에게 낯선 충격이었어요.
"힌두교는 미신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철학 체계 중 하나"라는 주장을, 플라톤과 칸트를 읽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전달했거든요.
그의 강의실은 항상 가득 찼어요.
"동양 철학은 그냥 신비주의 아닌가요"라는 편견에 균열이 생긴 게 이 시기예요.
그 균열을 낸 사람이, 선교사 교실에서 철학을 배우기 시작한 인도 청년이었죠.

요시프 스탈린은 외국 외교관을 거의 만나지 않았어요.
냉전 초기 소련의 최고 권력자로, 이념이 다른 상대를 만날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1949년 인도 대사로 모스크바에 부임한 라다크리슈난과는 여러 차례 직접 면담을 가졌어요.
더 이상한 일은 임기가 끝날 때 일어났어요.
라다크리슈난이 귀국하는 날, 스탈린이 공항에 직접 배웅을 나왔어요.
외국 대사를 보내러 스탈린이 공항에 나타난 건 전례 없는 일이었어요.
라다크리슈난은 외교 협상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떤 체제가 옳은가 대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었죠.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 질문이 스탈린의 경계심보다 먼저 닿았던 것 같아요.

라다크리슈난에게는 생일이 없어요.
정확히는, 자기 생일을 자기 것으로 갖지 않았어요.
1962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제자들이 생일을 축하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제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 그날을 인도의 모든 선생님을 기리는 날로 만들어 준다면 더없이 영광스러울 것 같아요."
그날부터 9월 5일은 인도의 스승의 날이 됐어요.
매년 이 날 인도 전역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행사를 열어요.
라다크리슈난의 생일은 그렇게 자신의 것이 아닌 날이 됐어요.
선교사 교실에서 교수를 논문으로 반박하던 소년은, 결국 나라 전체의 교육관을 바꾼 대통령이 됐어요.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생일을 포기하는 결정이었다니, 어딘가 그 사람다워요.
지금 당신이 고마운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면, 그 마음도 이미 그의 유산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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