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쿠디(Khudi)는 이크발이 모든 사람 안에 있다고 본 '자아', 곧 신에게서 받은 불꽃이에요. 이 불꽃을 흐릿하게 놔두지 않고 스스로를 또렷이 알아 단단히 세울수록, 사람은 더 온전한 자기 자신인 '완인(完人)'에 가까워진다는 뜻이에요.
혹시 손바닥으로 촛불을 감싸 본 적 있나요?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잘 지키면 다시 환하게 타올라요.
파키스탄의 시인이자 철학자 무함마드 이크발(1877년부터 1938년까지 살았어요)이 말한 '쿠디(Khudi)'가 바로 그 촛불을 닮았어요.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로 쿠디는 '자아', 그러니까 '나 자신'을 뜻해요.
이크발은 이 자아를 아주 특별하게 봤어요.
그는 쿠디를 쿠란이 말하는 신성한 불꽃 '루흐(Rooh)'와 같은 것으로 여겼거든요.
사람 안에는 신에게서 건너온 불꽃이 하나씩 들어 있고, 그게 바로 자아라는 거예요.
옛이야기에서 신이 천사들에게 첫 인간 아담 앞에 엎드리라고 명한 것도, 아담 안에 이 불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어요.
즉 쿠디는 '별것 아닌 나'가 아니라, 온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한 불씨인 셈이에요.
이크발은 케임브리지와 독일에서 공부한 뒤 자기 생각을 시로 풀어낸 사람이에요.
그가 보기에 많은 사람이 자기 안의 불꽃을 잊은 채 흐리멍덩하게 살고 있었어요.
남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가고, "나는 뭐 별거 아니야" 하며 스스로를 자꾸 작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그는 정반대로 말했어요.
자아를 꺼뜨리지 말고 또렷이 알아라.
중국어 자료는 쿠디를 '자아인식(自我認識)', 곧 자기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풀이해요.
이렇게 자기를 알고 단단히 벼린 사람이 마침내 '완인(完人)', 곧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세운다는 것이 이크발의 그림이었어요.
자아를 키우는 일이 곧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거죠.
이크발은 이 생각을 딱딱한 논문이 아니라 페르시아어 시로 노래했어요.
대표작이 두 편 있어요.
| 시집 | 우리말 뜻 | 다루는 것 |
|---|---|---|
| 아스라르 이 쿠디(1915) | 자아의 비밀 | 한 사람이 자기 자아를 단단히 세우는 법 |
| 루무즈 이 베쿠디(1917) | 몰아의 신비 | 그 자아가 공동체 안에서 어울리는 법 |
먼저 1915년 시집 《아스라르 이 쿠디》는 우리말로 '자아의 비밀'이에요.
사람 하나하나가 자기 자아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노래해요.
이 시집이 큰 반향을 얻어 이크발은 영국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어요.
이어 1917년 《루무즈 이 베쿠디》, '몰아의 신비'가 나와요.
'베쿠디'는 자아를 잊는다는 뜻인데, 자아가 아예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단단해진 자아가 혼자 뽐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공동체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 이야기예요.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 불을 옮겨 방 전체를 밝히는 것처럼요.
정리하면 이크발의 길은 두 걸음이에요.
먼저 내 안의 불꽃을 또렷이 키우고(자아의 비밀), 그다음 그 불꽃을 함께 나눠요(몰아의 신비).
자기를 세우는 일과 남과 어울리는 일이 반대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크발의 쿠디는 백 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도 와닿아요.
우리도 종종 남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기 불꽃을 스스로 끄곤 하니까요.
이크발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 불꽃은 원래 귀한 것이니 함부로 끄지 말라고요.
다만 그는 나 혼자만 잘나면 된다고 하지도 않았어요.
단단해진 나는 결국 곁의 사람들과 이어질 때 가장 밝게 탄다고 봤으니까요.
이크발의 쿠디 철학은 "네 안의 불꽃을 얕보지 말라"는 한마디로 묶을 수 있어요.
쿠디는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로 '자아'이고, 이크발은 이를 신이 준 불꽃 '루흐'와 같게 봤어요.
그 불꽃을 또렷이 알고 단단히 세우면 온전한 사람인 '완인'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이룬다고 그는 생각했어요.
자아를 세우는 일과 이웃과 어울리는 일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자아의 비밀과 몰아의 신비라는 두 시집에 담긴 그의 마음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