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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모순적 자기동일은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이 하나로 녹아 사라지는 게 아니라, 팽팽하게 맞선 긴장을 그대로 품은 채 하나의 '나'를 이룬다는 논리예요. 대립이 없어져야 통일되는 게 아니라, 대립이 살아 있어야 오히려 그것이 나 자신이 되는 거죠.
여러분, 열두 살 때 사진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키도 얼굴도 생각도 다 다른데, 그래도 우리는 "저건 나야"라고 말하죠.
다른데 같다니, 곰곰이 따지면 좀 이상한 말이에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년부터 1945년까지 산 일본 철학자)는 바로 이 이상함을 정면으로 파고들었어요.
니시다는 동서양 사상을 한자리에 놓고 사유한 교토학파의 창시자예요.
그가 1939년에 발표한 논문 제목이 바로 「絶対矛盾的自己同一(절대모순적 자기동일)」이에요.
矛盾(모순)은 서로 반대라서 함께 있을 수 없어 보이는 것, 自己同一(자기동일)은 자기가 자기 자신과 같다는 뜻이에요.
이어 붙이면 "서로 반대되는 것이 그대로 하나가 되어 자기 자신을 이룬다"는 말이 돼요.
보통 우리는 반대되는 둘이 부딪치면, 하나가 이겨서 다른 하나가 없어지거나, 둘이 적당히 섞여 중간쯤 되는 무언가로 정리돼야 마음이 놓여요.
니시다는 그게 아니라고 해요.
반대되는 둘이 팽팽하게 맞선 그 긴장 자체가 바로 '나'라는 거예요.
긴장이 풀리면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 셈이죠.
이 대목에서 독일 철학자 헤겔이 자주 함께 불려요.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正)·반(反)·합(合)으로 소개돼요.
어떤 주장이 있으면 그 반대가 나오고, 둘이 부딪쳐 더 높은 단계인 '합'으로 올라간다는 그림이에요.
이때 원래의 대립은 한 단계 위로 접혀 들어가면서 정리돼요.
이 '접어 올림'을 지양(止揚)이라고 불러요.
니시다의 모순적 자기동일은 여기서 갈라져요.
니시다는 대립을 더 높은 '합'으로 올려 정리하지 않아요.
긍정과 부정, 이쪽 극과 저쪽 극을 끝까지 살려 둔 채, 그 맞섬 자체가 하나의 주체를 정의한다고 봐요.
| 구분 | 헤겔 변증법 | 니시다 모순적 자기동일 |
|---|---|---|
| 대립을 다루는 법 | 더 높은 '합'으로 지양해 정리 | 두 극을 그대로 유지 |
| 긴장의 운명 | 위 단계로 올라가며 풀림 | 끝까지 살아 있음 |
| 하나됨의 방식 | 대립이 종합되어 하나 | 대립한 채로 하나 |
그래서 니시다에게 통일이란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품는 것'이에요.
반대되는 둘이 각자 뾰족하게 살아 있을수록, 그 둘이 함께 이루는 하나도 더 또렷해지는 거죠.
말이 어렵다면 팽이를 떠올려 보세요.
팽이가 가장 힘차게 돌 때, 신기하게도 겉으로는 딱 멈춰 선 것처럼 고요해 보여요.
격렬한 움직임과 완벽한 정지가 한 몸에 겹쳐 있죠.
움직임이 멈춤을 지우지 않고, 멈춤도 움직임을 없애지 않아요.
둘 다 팽팽할 때 비로소 '잘 도는 팽이'가 돼요.
모순적 자기동일이 말하는 하나됨이 이런 모습이에요.
우리 자신도 그래요.
어제의 나는 이미 지나가 없고, 내일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그 사라짐과 아직-없음 사이에서 살아 있어요.
없음과 있음이라는 반대가 매 순간 맞부딪치는 자리, 그 긴장 위에 '나'가 서 있는 거예요.
니시다는 만년에 이런 관계를 逆対応(역대응)이라는 말로도 풀었어요.
유한한 내가 죽음이라는 나의 부정에 정면으로 마주할수록, 오히려 '나'라는 개별 존재는 더 예리하게 또렷해진다는 거예요.
나를 지우려는 힘 앞에서 내가 더 선명해진다니, 이것도 모순이 그대로 하나되는 한 장면이죠.
요즘 우리는 나를 하나의 깔끔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실제 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면서 그대로 머물고 싶고, 혼자이고 싶으면서 함께이고 싶어요.
이 뒤섞임을 '아직 정리 못 한 미숙함'으로만 여기면 마음이 자꾸 불편해져요.
모순적 자기동일은 다르게 봐요.
그 맞섬을 억지로 하나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오히려 반대되는 마음들이 팽팽하게 함께 있는 그 상태가 바로 살아 있는 '나'라고 말해 주거든요.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한 게 아니라, 맞서 있기 때문에 생생한 거예요.
니시다의 이 사유는 개인의 마음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나 세계가 하나를 이루는 방식으로도 넓게 읽혀요.
모순적 자기동일은 니시다 기타로가 1939년 논문에서 벼린 개념으로,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을 더 높은 단계로 접어 정리하지 않고 그 긴장을 그대로 살려 둔 채 하나의 자기를 이룬다는 논리예요.
헤겔이 대립을 '합'으로 지양했다면, 니시다는 대립을 대립인 채로 붙들어요.
팽이가 가장 세게 돌 때 멈춰 보이듯, 없음과 있음, 삶과 죽음이 맞부딪치는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어요.
그래서 이 개념을 기억하는 가장 짧은 문장은 이거예요.
대립이 사라져야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대립이 살아 있어야 그것이 나 자신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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