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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순수경험이란 '나'와 '그것'이 갈라지기 전,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의 겪음 자체를 말해요. 니시다 기타로는 이 갈라지기 전의 경험이야말로 모든 것이 거기서 갈라져 나오는 진짜 실재라고 봤어요.
좋아하는 노래에 푹 빠져 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정말 빠져 있는 순간에는 "지금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조차 없어요.
나와 노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소리가 흐르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다 문득 "아, 좋다" 하고 생각이 드는 순간, 비로소 '듣는 나'와 '들리는 노래'가 둘로 나뉘어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가 말한 순수경험(純粋経験, junsui keiken)은 바로 이 '둘로 나뉘기 전'의 겪음이에요.
색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은, 그것이 바깥에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보다도, 내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자각보다도, 저 색이 빨강이라는 판단보다도 앞서 있어요.
니시다는 이 나뉘기 전의 경험을 모든 경험의 밑바탕이자 '유일무이한 실재'라고 불렀어요.
니시다 기타로는 교토학파(京都学派)를 연 일본 철학자예요.
젊을 때 칸트와 헤겔 같은 서양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토에서 선(禪) 스승 아래 참선 수행을 오래 했어요.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명상, 이 두 세계가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히고 섞였지요.
그 결과가 1911년 1월에 펴낸 첫 책 『善の研究』(선의 연구)예요.
이 책은 바로 이 순수경험 이야기로 문을 열어요.
보통 우리는 '먼저 세상이 있고, 그다음에 내가 그것을 경험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니시다는 이 순서를 뒤집어요.
'경험이 먼저 있고, 세상과 나는 그 경험이 나중에 갈라진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에게는 경험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출발점이에요.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볼게요.
우리가 파란 하늘을 볼 때, 사실은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겹쳐 얹어요.
니시다가 짚은 순서를 표로 나눠 보면 이래요.
| 우리가 나중에 덧붙이는 것 | 예시 |
|---|---|
| 이건 내 바깥에 있는 대상이야 | "저 하늘은 밖에 있어" |
| 나는 그걸 보는 사람이야 | "내가 지금 보고 있어" |
| 저것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어 | "저 색은 파랑이야" |
순수경험은 이 세 가지가 얹히기 바로 '전'의 순간이에요.
그저 파랑이 있을 뿐, 아직 '보는 나'도 '보이는 하늘'도 갈라지지 않은 상태지요.
갓난아기가 처음 빛을 마주할 때나, 우리가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해 자기 자신을 잊은 순간이 여기에 가까워요.
니시다는 의식의 가장 깊은 바닥에는 자기가 자기를 비추는 구조가 있다고 보고, 이것을 자각(自覚, jikaku)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도 비추는 것과 비추어지는 것 사이에 틈이 없어요.
순수경험이라는 발상은 니시다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어요.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오스트리아 학자 에른스트 마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니시다는 그들에게서 자극을 받았어요.
그런데 니시다는 두 가지 점에서 이들과 선을 그어요.
첫째, 그의 순수경험은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내 경험, 네 경험으로 나뉘기 전이니까요.
둘째, 이 경험은 뚝뚝 끊긴 감각 조각이 아니라 매끄럽게 이어지며 저절로 펼쳐지는 흐름이에요.
마치 강물이 끊기지 않고 흐르듯이요.
여기서 세계와 자아가 갈라져 나오는 거예요.
순수경험이라고 하면 "결국 모든 게 내 마음속 생각이라는 거지?" 하고 오해하기 쉬워요.
하지만 니시다는 자신의 입장이 그런 주관적 관념론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았어요.
왜냐하면 순수경험의 뿌리는 '나'라는 인간의 마음도 아니고, 어떤 신의 정신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어떤 주관도 실재의 출발점으로 놓이지 않아요.
오히려 나와 세상 둘 다가 이 경험에서 갈라져 나온 결과일 뿐이지요.
그러니까 순수경험은 '내 머릿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을 모두 낳는 더 근본적인 바탕인 셈이에요.
순수경험(純粋経験)은 니시다 기타로가 1911년 『善の研究』(선의 연구)에서 내놓은 출발점 개념이에요.
핵심만 다시 묶으면 이래요.
첫째, 순수경험은 '보는 나'와 '보이는 그것'이 갈라지기 전,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의 겪음 자체예요.
둘째, 우리가 흔히 얹는 세 가지 생각(바깥 대상이라는 생각, 느끼는 나라는 자각, 무엇이라는 판단)보다 앞서 있어요.
셋째, 그래서 니시다는 이것을 모든 경험이 거기서 갈라져 나오는 유일무이한 실재로 봤어요.
넷째, 이건 내 머릿속 생각이라는 관념론이 아니에요.
나와 세상 둘 다를 낳는 더 밑바닥의 흐름이니까요.
다음에 좋아하는 무언가에 흠뻑 빠져 나 자신조차 잊는 순간이 온다면, 그게 바로 니시다가 가리킨 순수경험에 가장 가까운 자리라고 기억해 두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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